낯설고도 낯 익은 히코리
낯설고도 낯 익은 히코리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2.10.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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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이 있는 창 68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히코리(Shagbark Hickory)
봄에는 땅을 보며 걷고 가을엔 하늘을 보며 걷는다. 봄은 생명의 탄생을 고하는 계절이라 땅 흙 속에서 돋아나는 생명을 보기에 좋고, 가을엔 하늘을 향해 벋은 나무 꼭대기-우듬지-를 보면서 우리네 순명(順命)을 보는 듯 하여 좋기만 하다. 고목 아래 잔디 위에는 비로드를 깔 듯 낙엽이 져 있고, 나무에 달린 잎새들은 마지막 잎새임에도 불구하고 그 단풍을 뽐내고 있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비애미(悲哀美)가 느껴진다. 시몬처럼 낙엽을 밟으며, 영랑이 바라보던 단풍을 보며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낯설게 대한 이 나무는 영명(英名) (Shagbark Hickory Carya ovata,) 앞에 ‘Shag’가 붙어서 참 특이하다 하면서 수피를 바라본다. 사람 이름처럼 그의 특징을 살려서 기억하기 좋게 붙여주는 게 나무 세계에서도 통하는가 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Loose grey shaggy bark and edible nuts’라고 표기되어 있다. ‘Shaggy’가 털 투성이의, 거친, 우거진 뜻을 지니는데 나무 둥치(Trunk, Bole)에 껍질(Bark)이 너덜너덜한 모양새로 세로방향으로 거칠게 들고 일어난 듯 붙어있어 그리 붙여졌나 보다. 멀리서도 연한 자색과 회색을 섞은 듯한 거의 거지 옷차림은 영락없는 ‘Shagbark’에 걸맞는구나 한다. 메이플 시럽의 풍미제(風味劑)와 목질(Wood)은 고기의 훈제로도 쓰인다 하니 영락없이 쓸모 없는 껍질로만 보였는데, 한 겹 벗겨 태워보면 어떤 냄새가 날까 궁금해진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중의 낙엽을 태우니 커피향이 난다고 한 것처럼 혹시 그 향내를 풍겨줄까?

그런데 왜 느닷없이 내게 Shark(상어)가 떠오른 걸까? 아마도 그의 속성이 거친 나무갗에 유관(有關)하여 바다의 무법자로 군림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열매는 보다 동그랗게 아주 작은 단호박 마냥 둘레로 그어진 두어 가닥의 세로 줄무늬 새김으로 감싸여 있다. 그 속에 동그라니 단아한 견과(Nut)가 들어있는데, 껍질 분리가 좋게 하도록 하기 위한 번식 전략이 아닌가도 한다. 

이곳에서 만난 낯선 수종인 히코리의 속살(木質部)을 확인할 기회가 있어 기뻤다. Home Depot(홈디포)라고 부르는 나무, 철물, 조명등, 화초, 나무 묘목 등을 판매하는 종합 매장 성격이 있는 곳에서 전시된 Hickory Floor(히코리 마루판)을 대하면서 그의 외모에 걸맞는 나뭇결과 거무튀튀한 색상을 대하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도 9월 들어 노랗게 단풍이 드는 긴 타원형의 5장 잎새- 머리에 1장 좌우 대생으로 2쌍이 나 있음-가 삼지 구엽초 마냥 한 잎자루에 달린 그 모양새는 푸근하고도 넉넉하다. 그래서 이곳 세미트리의 가을을 노랗게 수놓는 Accent가 되어 준다. 이 노란 단풍의 하나는 늦은 봄에서 여름 한철 Sunburst Locust Tree가 연출한다. 오늘도 낯선 나무가 이제는 여느 시골집 손 튼 머슴 아저씨같이 정겹게 느껴지는 건 우연한 만남의 인연치고는 그가 안겨주는 인상 깊은 풍모(風貌) 때문이리라!   /나무신문

 

낯설고도 낯 익은 히코리 

눈에 띄는 남루한 옷가지를 걸치고
너덜너덜한 목숨을 구걸한 바도 없는
광야의 거지 신사

태평양을 넘나드는 상어와 비슷한
거친 품성을 잠재워
속살은 자유분방한 물결을 지녔고나

외유내강이 아닌 외강내유로 살아가는
그대 삶의 철학

때로는 그리 살아서
득도하거나 해탈함인가?

오늘도 그대를 보면서
휘몰아쳐 간 세상의 
흔적을 쓰다듬어 보느니!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