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나무의 역사 - 1 나무의 시대
숲과 나무의 역사 - 1 나무의 시대
  • 김오윤 기자
  • 승인 2022.09.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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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를 둘러싼 여러가지 모험 138 - 글 노윤석
노윤석  녹색탄소연구소 선임연구원 / 우드케어 이사 / 우드케어 블로그 운영자
노윤석
녹색탄소연구소 선임연구원
우드케어 이사
우드케어 블로그 운영자

나무는 인류 문명의 탄생과 진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자원 중의 하나이다. 불의 기원이고 청동기와 철기 시대의 도래를 가능하게 한 최초의 에너지원이자 주요한 건축자재이고 바퀴, 풍차, 선박, 가구 및 악기까지 거의 모든 것의 자재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목재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정맥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인류의 조상이 6천만년 전 숲속에서 생활하며 지금까지 진화해오는 동안 나무는 인류의 생활에 꼭 필요한 자원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하지만 이 나무의 시대는 어쩌면 우리 시대에 끝날지도 모른다. 심각한 기후변화로 세계 각지의 산림들이 산불에 의해 파괴되고 경제개발 및 식량생산 등을 위해 훼손되고 있다. 파괴된 산림은 기후변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숲과 나무는 이런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숲은 생물들에게 삶의 공간을 제공하는 한편 탄소를 흡수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도와준다. 결국 숲과 나무는 인류의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자원인 것이다. 숲과 나무가 어떻게 인류와 함께 삶을 개척하였는지, 그렇게 고마운 동행자가 어떻게 버림을 받았는지, 과거의 기록은 앞으로의 상생적 동행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 역사의 단편들을 여기서 정리하고자 한다. 

The Silva - 영국왕립학회 최초의 연구보고서
숲과 나무가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예가 세계 최초의 근대 학회인 영국 런던왕립협회(The Royal Society of London)가 발행한 최초의 도서이다. 이 책의 제목은 “The Silva or a Discourse of Forest Trees(산림 또는 산림수목 연구)”로 산림을 조성하고 관리하기 위한 방법을 기술한 책이었다. 당시 왕립학회에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현대 물리학의 창시자 아이작 뉴턴이나 왕립학회의 창립자이며 보일의 법칙으로 유명한 화학자 로버트 보일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최초로 출판된 연구보고서가 임업관련 책이었다는 것은 산림과 임업, 그리고 목재가 영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원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영국은 해외에 많은 식민지를 침탈하고, 또한 많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따라서 해군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박을 만들고 많은 목재가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군사력 증대를 위한 산림의 무분별한 사용이 결국 영국 산림의 황폐화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해군력의 저하를 우려한 영국왕실이 왕립협회를 통해 국가의 산림을 복원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 책을 발행하게 된 것이다.

현재 영국의 산림면적은 전체 국토의 13%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우리나라는 약 63%). 그런데 조림학적으로 볼 때 영국의 이런 낮은 산림율은 뭔가 이상하다. 온대지방이면서 바닷가에 접해 있어 항상 습도가 높고 비도 자주 내려 나무를 포함한 식생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다. 가문비나무나 레드우드 숲으로 덮여 있는 미국과 캐나다의 동부 연안과 비슷한 환경이다. 로빈후드에 나오는 셔우드숲이나 영국의 지명에 무슨무슨 포레스트가 많은 것을 보면 예전의 영국은 대단히 산림율이 높은 국가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영국의 산림이 이렇게 파괴된 것은 결국 무분별한 목재의 사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찬란했던 대영제국도 영국의 산림과 함께 쇠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The Silva or a Discourse of Forest-Trees, John Evelyn, 1962
The Silva or a Discourse of Forest-Trees, John Evelyn, 1962

잊혀진 역사
현대 역사가들은 인류의 역사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한다. 하지만 나무는 그 모든 시기를 통틀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원이자 도구였음에도 그 역할을 규명해주는 용어가 없다.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의 나무가 부패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까닭에 남아있는 유물이 거의 없다는 데서 기인하지만 최근에는 발전된 기술에 따라 인류가 오랜 옛날부터 나무를 도구로 사용한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목재 사용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발견된 150만년 전 석재 손도끼에 붙어 있는 아카시아 나무의 잔류물이다. 현재도 망치나 도끼에 목재손잡이를 사용하듯이 다루기 쉽고 가공이 쉬운 나무는 인류의 진화와 함께 석기, 청동기, 철기 등과 결합하여 그 활용 방법이 진화해왔다. 

가장 오래된 목재 도구의 기록은 영국의 해안가에서 발견된 주목으로 만든 창이다. 약 1만년 전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본격적으로 산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산림에서 목재나 열매 등 산림부산물을 채집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었다면,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인간이 산림을 이용하는 방식 또한 많이 바뀌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나무를 이용하여 도끼를 만들고 그 도끼를 이용하여 나무를 베어내어 농경지를 개간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인류가 산림을 관리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 참나무, 물푸레나무, 밤나무 등을 20년 주기로 벌채하여 목재를 사용하기도 하고 새로운 묘목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산림경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패러독스
청동기와 철기시대가 시작되면서 인류는 더욱 나무에 의존하게 되었다. 금속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의 열이 필요했고, 그 당시에 이 같은 열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나무를 고온으로 가열하여 만든 숯이 유일했다. 결국 목재를 이용하여 만든 청동기와 철기들이 다시 나무를 베는 데 이용되는 역설이 한층 더 심화된 것이다.

나무 대신 석탄을 사용하게 된 산업혁명 이후에는 물자의 생산과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자원의 약탈적인 사용이 더욱 촉발되었고, 산림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제국주의 국가들 간에 전쟁과 그로 인한 군사력 경쟁은 더욱 심각한 산림 파괴로 이어졌다. 이 당시 선박 제조와 건축을 위한 무분별한 벌채로 영국의 산림 피복율이 10%까지 줄었다고 하니 산림 자원의 파괴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되자 자국에서 목재를 수급할 수 없었던 유럽 제국들은 식민지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와 같은 식민지의 산림들이 대규모로 파괴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 북미 지역에는 약 4억㏊의 산림이 있었으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정착한 후 약 1억 1600만㏊의 산림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우리나라 산림 수탈도 같은 측면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다. 항간에는 식민지배 시대가 그 나라의 체제를 변화시키고 경제의 기반을 닦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림의 경우도 일제강점기 때 산림에 대한 기초조사도 이루어지고 외국의 임업기술이 들어왔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제국주의 식민지를 겪은 나라 중에 제대로 근대화를 이룬 나라가 얼마나 되는지, 제국들이 식민지의 자원을 조사하고 기술을 들여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도 이렇게 산림녹화를 이루고 경제발전을 한 것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독특한 상황이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나무신문

노윤석 
녹색탄소연구소 선임연구원 / 우드케어 이사 / 우드케어 블로그 운영자

서울대학교에서 산림자원학을 전공했다. (주)효성물산, 우드케어, (주)일림에서 재직했다. 현재 한국임업진흥원 해외산림자연개발 현장자문위원과 녹색탄소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의 산림청, 코트라, 국립산림과학원, 농업진흥청 등의 해외임업과 산림을 이용한 기후대응 및 탄소중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