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재 호두나무
하늘재 호두나무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2.08.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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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이 있는 창 66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호두나무(胡桃, Walnut)
이 곳에서 대하는 호두나무는 다양한 수종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살갗(樹皮, Bark)이 그야말로 백인에 가깝게 보오얀 편이고 잎은 완만히 둥그스레하며 열매가 동그란 English Walnut(Juglans regia L.) 살갗이 거무스레한 기운을 띠는 Black Walnut(Juglans nigra L.), 게다가 갸름하게 동그란 열매를 단 Chinese Walnut(Juglans cordiformus Max.), 그리고 절간에서 주렴으로 드리운 것처럼, 아니면 고대의 왕이 쓰던 왕관의 늘어뜨린 장식술같기도 한 것을 주렁주렁 매어 단 Caucasian Wingnut(Pterocarya fraxinifolia, Juglandaceae)이란 이름의 나무까지 있으니…

Walnut의 잎새가 부드럽고 길쭉하게 타원형을 이룬 것이나 동그마한 열매가 2~3개 다닥다닥 어깨를 겨루어 붙어있는, 안정된 삼각형 모습의 수형(樹形)을 보면 바로 나무의 정형(正形)을 마주하는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 진다. 

그러나 열매를 사람이 먹을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 보통 우리가 견과류로 각질을 깨고 속에서 나오는 뇌 구조 모양의 호도알을 생각하고 호도, 또는 호두라고 명칭하는 것을 이 곳에선 그냥 월넛(Walnut)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곳에서 흔한 청설모 손님의 먹잇감으로 족한 것인지… 이 곳 칠월 떨어진 이들 월넛의 열매를 보노라면, 베물다 시어 아니면 땡감처럼 떫어서 버린 냥 뒹구는 알(Fruit)들을 대할 수 있다. 월넛 곁에 가면서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을 떠올린다. 또, 고국에서 천안을 내려가는 하행 기차 칸에서 사서 입 안에 쏙 넣어주던 호두과자 생각도 난다. 오늘 저녁엔 딸에게 머핀(Muffin)을 오븐에서 구울 때 깐 호두와 아몬드를 듬뿍 넣어달라고 해야겠다.   

 

하늘재 호두나무

내 고향 직지사 가던 하늘잿길
한적한 모롱이에서 
너를 만났지

도둑놈 심보로
너를 똑 땄지

향긋한 네 냄새가 좋아서라고
핑계를 생각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여름 나무
길다란 잎새 그늘에 누운 
호두까기 인형이 생각났다고
둘러도 대겠지만

그냥 네게 여름이 찾아와
동그마하게 열음한 것이 
질투 반 부러움 반 때문이었다고 해둘게

그 호두알 바라고 바래어
네 속을 단단한 속을 보고 싶을 때
가만히 네 이름을 불러줄게

파라솔 펴는 패랭이 꽃도 아니고
넌 하늘잿길 호두라구  /나무신문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