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꿩의 비름 곁에서
큰 꿩의 비름 곁에서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2.05.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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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이 있는 창 62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큰 꿩의 비름(Live forever, Sedum spectabile)

어릴 때 밥상에는 참비름, 쇠비름을 데쳐 된장, 식초 등에 버무린 나물이 오르곤 해서 비빕밥을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난다. 자라서는 고향 밭을 추수하고 난 이듬해 봄부터 누가 거둬주지 않아도 수북이 노란 작은 꽃을 피우며 무성히 나던 쇠비름을 잊을 수 없다. 쇠비름을 데쳐 말려 환(丸)을 지어 약으로 먹는다는 사실을 접한 적도 있다. 서울 사진관에서 그 주인 마담이 환을 먹어보라고 내밀던 기억… 그 틈새에 이 곳 보도(步道)나 내 집 앞 주차 보도에 돋아나던 쇠비름도 잡초라고 뽑아내지 않고 두던 게 나의 성징(性徵)이었다. 쇠(소, 牛)도 안먹는다는 비름인데, 어찌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는지… 비름 앞에 깃털이 예쁜 장끼-‘ 큰 꿩’-이 들어있어 친근한 꽃이 여름 들며 기어이 꽃을 피운다. 아마도 꽃대 위 맨드라미 벼슬이라도 되듯이 연분홍색을 거쳐 볼고랗게 피어 일광 절약 시간제(Daylight Saving Time)가 끝나는 11월 초를 거쳐 겨울이 깊어가는데도 그저 색만 바래어 마른 수수꽃같이 고개를 쳐 들고 있다. 혹여 그 모습이 꿩의 깃털 모습 마냥 둥두레 해서 붙여진 이름인지도 모를 일이다. 잎은 동그마니 길쭉하고 도톰한 게 영락없는 쇠비름 잎이 수십 배 커진 모습이다. 지금은 묵혀진 시골 고향 밭에 봄이면 때맞춰 쇠비름이 자욱이 나고 있을까?

 

큰 꿩의 비름 곁에서

네 이름이 어찌 그리 이쁘노?
그냥 잡초라고 버려질 비름일만도 한데
꿩의 비름이라니

너의 두상꽃차례(頭狀花序) 위에 
나비도 앉았다 가고
심심한 날엔 벌도 찾아오고
어제는 꿩도 다녀갔더냐

제 머리, 꽁지를 닮았다고
입 맞추고 가더냐

가을 무서리 내릴 때까지
수수떡 냄새라도 풍기는 너의 꽃 향기

보드라운 치마폭에 싸여
꼿꼿이 고개 드는 
한 사람도 있었느니

오늘은 고향 마을 숲
꿩이라도 불러
너인 냥 반기고 싶구나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