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식물원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식물원
  • 김오윤 기자
  • 승인 2022.05.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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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지리와 역사 90 - 권주혁 박사
식물원 안에서 필자.
식물원 안에서 필자.

중부 유럽의 체코슬로바키아는 1993년초에 평화적으로 서쪽의 체코와 동쪽의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다. 이 가운데 슬로바키아는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 서쪽은 체코, 남쪽으로는 헝가리, 북쪽으로는 폴란드 그리고 서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접하고 있는 면적 4.9만㎢ (남한의 약절반크기), 인구는 약550만명의 크지 않은 공화국이다. 다뉴브 강을 끼고 있는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는 마치 그림 같은 도시이다. 밤에 도착하는 바람에 도시를 알 수 없었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 도시를 둘러보니 몇 달 간 푹 머물며 책을 저술하고 싶은 생각이 나는 도시이다. 시내의 높은 언덕 위에는 고성(古城)이 도시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는 가하면 아름다운 다뉴브강을 따라 걷다보니 마음까지 맑아진다. 시내 곳곳에는 가로수로서 칠엽수(七葉樹: 학명 Aesculus hippocastanum Sapindaceae)가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나무를 마로니에(Marronnier)라는 프랑스식 이름으로 부르지만 미국, 영국 등지에서는 말밤나무(Horse Chestnut)라고 부른다. 서울대학교가 관악산으로 이전하기 이전에 종로구 혜화동과 이화동 사이에는 서울대 문리대가 있었는데 그 앞길에 마로니에가 많이 식재되었었고 오늘날에는 마로니에 공원이 들어서 있다.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의 가로수가 마로니에이고 몽마르트 언덕에서도 이 나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참고로 서양에서 보는 마로니에와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보는 마로니에는 약간 다르다(우리나라 마로니에는 일본 칠엽수이다). 우리나라의 마로니에는 잎이 삿갓모양으로 처지는 것들도 있는데 유럽의 마로니에는 잎이 처지지 않고 평평하다. 하여간 브라티슬라바 거리를 걷다보면 마로니에가 많아 길거리에 열매(밤 비슷하나 독성이 있다)가 여기저기 많이 떨어져 있다. 한 마디 더하자면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남태평양 지역에서 타운(Taun)이라는 목재를 다량 수입하여 가구, 합판 등을 제조하고 있는데 마로니에는 타운과 같은 과(科)이므로 대학에서 4년간 목재를 공부하고 그 후 34년 동안 목재회사에서 산업역군으로 일한 필자에게는 일반인들이 느끼는 것과 달리 무척이나 친근한 나무이다.  

사진 오른쪽 뒷편에 바늘처럼 솟아있는  이탈리안 사이프러스가 보인다.
사진 오른쪽 뒷편에 바늘처럼 솟아있는 이탈리안 사이프러스가 보인다.
식물원안에 있는 마로니에(칠엽수) 나무.
식물원안에 있는 마로니에(칠엽수) 나무.

필자는 브라티슬라바 시내에서 전차를 타고 시내 서쪽, 다뉴브 강변 인근에 있는 식물원을 방문하였다(전차 이외 노선버스도 있다). 정문은 아담하고 단조롭다. 입장료는 3유로이나 65세 이상이라고 경로할인을 받아 1.5유로만 내니 별거 아니지만 기분이 좋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식물원을 들어가니 기초과학 학문을 연구하는 서양의 식물원 냄새가 대번에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세워진 이 식물원은 2만평 크기의 면적에 약 5천종이 넘는 식물이 식재되어 방문객을 맞고 있다. 중국에서 온 은행나무는 관록이 배어 나오는 자태를 보이고 있다. 아마도 식물원이 개원할 때 식재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호주 동남부와  남아메리카의 칠레, 아르헨티나에서 본 남양(南洋)삼나무과의 아라우카리아 수목도 높이 솟아있고 남·중부 유럽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측백나무과의 이탈리안 사이프러스(Italian Cypress)는 다른 나무들 뒤에 서서 머리만 내놓고 있다. 시내에서 본 마로니에도 물론 이곳에 있다. 한대에서 열대지역까지 지역을 대표하는 식물들이 구역별로 정리되어 있는데 선인장을 포함하여 열대와 아열대 식물은 온실 속에서 식생하고 있다. 이 식물원은 특히 장미정원으로 유명한데 약 150종의 각종 장미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크지 않은 면적의 식물원이지만 연못도 2개나 있다. 식물원 안을 걷다보니 다른 식물원에서 못 본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이 나라 시인의 시를 투명 유리판에 써놓은 것이다. 이러한 시판(詩板)이 식물원 안에 있는 벤치들 근처에 몇 개가 보인다. 아마도 현지인들은 이러한 시를 조용히 읊으면서 원내를 둘러보며 식물원을 만끽하리라.  

브라티슬라바 식물원의 정문.
브라티슬라바 식물원의 정문.

브라티슬라바에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던 17세기(1653년)에 이미 식물원이 만들어졌었으나 그후 무슨 이유인지 그 식물원은 없어졌다. 필자가 세계의 식물원 연재를 하면서 여러차례 언급하지만 우리나라는 식물원을 도시생활의 바쁜 생활리듬에서 벗어나 기분 전환하는 (휴식의 의미를 포함한) 시각에서 바라보므로 식물원이 정부 행정기관(시청을 포함한 관청)에 소속되어 있지만 서양은 16세기에 식물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기초자연과학 연구기관으로 여기므로 대부분의 식물원이 대학 또는 국가의 과학연구기관에 속해있다. 슬로바키아도 서양 국가이므로 당연히 이런 방식을 따라서 브라티슬라바 식물원은 코메니우스(Comenius) 대학에 소속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과학이라면 반도체, IT(정보기술)산업 등 당장 돈으로 연결되는 최첨단 산업을 우선하는 것 같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수많은 의약품이 식물에서 나왔고 오늘날도 계속 나온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서양에서 16세기에 식물원을 만든 목적은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물질을 식물에서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서양에서는 식물에 관한 연구를 기초자연과학의 가장 기본으로 여기는 것이다.    /나무신문

권주혁 
용산고등학교 졸업(22회),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가공학과 졸업, 파푸아뉴기니 불로로(Bulolo) 열대삼림대학 수료, 대영제국훈장(OBE) 수훈. 목재전문기업(이건산업)에서 34년 근무기간중(사장 퇴직) 25년 이상을 해외(남태평양, 남아메리카) 근무, 퇴직후 18개월 배낭여행 60개국 포함, 136개국 방문,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3년), 전 동원산업 상임고문, 전북대학교 농업생명 과학대학 외래교수(4년), 국제 정치학 박사, 저서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세계의 목재자원을 찾아서 30년> 등 19권. 현재 저술, 강연 및 유튜브 채널 ‘권박사 지구촌TV’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