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들레야에게 쓰는 편지
부들레야에게 쓰는 편지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2.04.15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무와 꽃이 있는 창 60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부들레야(Butterfly Bush)
어느 여름날 내 고향의 고즈넉한 가람(東國第一伽藍黃嶽山門)인 직지사엘 갔었다. 절을 들어서는 입구, 그리고 경내 대웅전 앞 화단에서 보지 않은 자주 보라색의 길게 내민 꽃뭉치를 보게 되었다. 이 꽃뭉치가 흡사 수수꽃다리같다 하여 Summer Lilac이라고 불린단다. 안보던 꽃에 코를 갖다 대니 향기도 여름날 논, 또는 밭에서 일할 때 새참을 가져온 여인네의 적삼에서 나는 냄새 같은 것을 지녔다. 코를 대니 물리칠 수 없는 향을 준다. 절에 핀 꽃! 세속(世俗)을 떠난 어느 승려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심은 것일까? 속세(俗世)의 잊지 못 하는 한때의 연인을 곁에 두고자 그리 심은 것일까? 생각에 잠겨도 보았다. 속세에 두고 온 사람을 잊지 못하는 어쩌지 못하는 불심(佛心)으로 피운 꽃이기를 바래어본다.

그 꽃을 이 곳의 가로변 또는 여느 집 앞에서 심심찮게 대하고는 반가웠다. 사람은 낯설지 않은 꽃을 대하게 되면 친근한 정이 솟는 모양이다. 

영어 이름도 이쁘다. 나비가 앉았다가 갈 듯한 큰 모양새의 꽃 무리-Butterly Bush(Buddleja davidii)-란다. 야단스럽지 않은 모습과 향기를 갖고 있는 그런 꽃이다.

게다가 ‘부들레야’란 꽃이름을 알면서 고향 절에서 대한 꽃임을 연관지어 붙들래야 붙들 수 없는 속세 연인의 이미지를 그려보았다. 부들레야와 ‘붙들래야’가 연음(連音)의 여운을 주기에… 

 

부들레야에게 쓰는 편지

붙들래야 붙들 수 없는 당신을 두고
나는 왔습니다

부들레야를 심었습니디
자주색 고개를 숙이는 당신 꽃이예요

잊은 것 같은데
아주 잊은 것 같았는데

붙들래야 붙들 수 없는 당신이
부들레야를 보니 살아나는군요

어찌하면 잊을 수 있겠는지요
어찌하면 놓을 수 있겠는지요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