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수나무 아래에 서면
계수나무 아래에 서면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2.03.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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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이 있는 창 57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계수나무(Katsura Tree)

이 나무를 대하면 먼저 가을날 노랗게 단풍들며 달콤한 솜사탕 같은 냄새를 안겨 주는 잎 때문에 그 나무가 있는 길로 가고 싶은 생각이 나게 한다. 그리고 윤극영 님의 노랫말 속에 나오는 계수나무와 달 속에 산다는 항아(姮娥)가 떠오른다. 

어쩌면 고국에서나 이곳에서 계수나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가을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을 Homo sapiens, Homo faber니 Homo ludens라는 학명으로 부르지만 ‘냄새를 맡고 느낄 수 있는 동물’이란 적절한 라틴어 이름이 있다면 붙여 보고 싶은 그 계절 속에 서있다.

내가 2년여 근무하던 경기도 남양주 진접면 장현리에 있는 산림교육원(山林敎育院)에도 계수나무가 있었다. 강의동(棟) 뒤켠에 두 채의 숙박이 가능한 목조(木造)의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가 있다. 하나는 경량식 목조주택(Light frame wood house)으로 지은  것이고, 또 한 채는 통나무 집(Log house)이다. 여름도 다 지나가는 가을 무렵 직원 가족에게 하룻밤 숙박을 허용해서 식구들이 자연휴양림에 온 듯이 호젓하게 잠을 자고 아침 밖에 나와 노랗게 물든 계수나무 아래 벤치에서 아내와 얘기를 나누던 것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뒤쪽으로 숲길이 나 있고 주변에 강의 실습용 나무들이 조그만 길을 따라 식재되어 있는 나의 제2의 친정이던 교육원이 눈에 선하다.

이 곳에서 이름표(식별표, Identification Tag)를 달고 있는 계수나무(Katsura Tree, Cercidiphyllum japonicum, Cercidiphyllaceae, Asia, Tree ID: 2735) 가 있고, 삼단 같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계수나무(Weeping Katsura, Cercidiphyllum japonicum ‘Pendula’)가 있다. 고목은 겨우내 잎 떨군 가지에 총총히 특유의 켜를 달고 있고, 늘어진 계수나무의 가지에는 봄에 켜의 도톰한 매듭에서 잎과 꽃이 피는 것을 보여 주어, 그 나무의 생리를 가늠해 보게 한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달은 미지의 동경(憧憬)의 대상이었다. 차고 이지러 지는 달의 형상을 보면서 먼데서 또는 가까이서도 시심(詩心)을 이입해 보곤 했다. 초생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반달, 조각달, 쪽달.. 이름도 많은데 이 가을은 하현달을 바라보면서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과 고향머리에 쓸쓸히 사실 아버님을 그려본다. 그렇지만 어릴 적 달 속에는 계수나무 아래 토끼 한 마리가 방아를 찧고 그 곁에 항아가 있었을 터이다.     

이 곳 계수나무 아래에서 ‘반달’ 노래를 나직히 불러본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나무신문

 

계수나무 아래에 서면

네 아래에 서면
삶은 달콤하다
솜사탕처럼

네 아래에 서면
삶은 그리웁다
달 속 항아처럼
달콤하고 그리운 게 
내게 남아 있을까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우는 삶의 섶

네 아래에 올 가을도 서 있다.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