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머나 먼 임진강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머나 먼 임진강
  • 나무신문
  • 승인 2008.01.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들은 북쪽으로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겨울 빈 들판으로 불어 가는 바람에 오래 묵은 흙냄새가 묻어났다. 나무 하나 없는 구릉 위로 독수리가 맴돌아 날고 있었다. 사람 발길 없던 수십 년 세월 땅은 기름에 절어 있는 것처럼 눅눅하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소외 받은 땅 경기 북부는 차라리 이국적이라서 더 매력 있다. 낯선 땅 비장함이 서려 있는 임진강에 붉은 햇살 부서진다. 정적이 흐르는 강물 위로 철새가 날 때 날 선 햇빛이 눈을 찌른다. 돌아가는 나의 그림자가 휴전선을 따라 동서로 길게 눕는다.

초소 두 번 지나고 마지막 초소에서 신분증을 건네주고 전망대로 차를 몰았다. 높은 하늘에 독수리가 날아다닌다. 마른 억새 힘겹게 서 있는 강가에 ‘웅웅’대는 바람 소리가 정적을 가른다. 이곳에서는 바람 소리마저 비장하다.
겨울 강은 야윈 채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무너진 다리는 교각만 남았다. 띄엄띄엄 물  속에 서 있는 교각은 강으로 들어가는 큰 발자국 같다.

비무장 지대를 굽어 볼 수 있는 태풍전망대에 도착했다. 통유리 밖으로 펼쳐지는 비무장 지대 풍경은 이국적이다.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야할 그곳은 누런 흙빛으로 덮인 구릉이 길게 뻗어 있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를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가지 못하고 있다.
이곳 하늘에도 독수리가 맴을 돌며 날아다닌다. 독수리 한 마리 갑자기 땅으로 수직낙하 하는 순간 북쪽 초소에서 무엇인가 반짝 거린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건만 비무장지대 철책을 눈앞에 둔 이곳에서는 그것이 무슨 신호와 상징처럼 다가온다.

돌아오는 길에 재인폭포를 들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 따라 내려간다. 내려가며 올라올 것을 걱정한다. 팍팍해진 다리를 이끌고 다니던 경기 북부 여행길, 재인폭포에서 또 하루를 마감한다. 계단 끝 철다리를 따라가다 난간에서 멈추어 선다. 돌과 나무 음습한 공기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폭포를 둘러싼 괴기한 바위절벽은 반지의 제왕에 나올 법한 모습이다. 20미터 가까운 높이에서 물이 떨어지고 물이 고이는 웅덩이 주변으로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시커먼 동굴이 보인다.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생명체가 깊은 숨을 쉬며 살고 있을 것만 같다.

풀과 나무에 초록이 물들고 숲이 우거져 있다면 부드럽고 풍성한 자연의 멋을 느낄 수 있으련만, 바위도 나무도 다 뼈를 드러낸 겨울에는 삭막하다 못해 괴기한 모습이 연출된다. 그러나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재인폭포의 물줄기와 폭포수 주변의 바위절벽은 재인폭포의 또 다른 매력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