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부산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부산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 나무신문
  • 승인 2008.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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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희뿌연 장막을 쳤다. 부산의 바다를 안개는 먼데서부터 감싸 안는다. 논리의 명확성으로 안개를 설명하기 보다는 뿌리 없는 감상으로라도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다. 유람선이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해변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보일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물 위의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잘 가세요, 잘 있어요’ 식 이별의 항구가 아니라, 이곳은 모두가 ‘잘’ 가는, ‘잘’ 가면서 모두 행복해야 하는 바다여행길이다.

배는 해운대 앞바다를 지난다. 저 멀리 백사장과 사람들이 보인다.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들이닥치는 풍경은 수영만을 가로지르는 광안대교다. 바다 밖에서 보는 광안대교는 한마디로 ‘물 위에 뜬 다리’다. 바다 위에 떠 있어 공중과 공중을 연결하는,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는, 그래서 땅이 땅으로 가게하고 허공이 허공으로 이어지게 하는 장엄한 역사의 풍광이다. 아직도 갈매기 무리가 배를 따라온다. 수백의 갈매기 떼가 배의 속도에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배의 속도와 같이 유영한다. 갈매기는 새우깡에 길들여져 있었다. 야생성은 이미 거세된 지 오래, ‘꺄악, 꺄악’ 대며 떼로 비명을 질러대는 시뻘건 눈의 갈매기들을 한 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 ‘조나단’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느 하늘 위에서 은빛 날개를 번쩍이며 자유비행을 하고 있을까. 갈매기들이 새우깡에 환장 하던 바다에서 나는 조나단을 생각했다. 아득한 수평선에도 보이지 않는 조나단을 찾느라 바다 가운데서 고개 젖히던 날, '번뜩' 나타난 저 갈매기 한 마리. 160마일 수직 낙하 이후 물수제비를 뜨면서 수평비행으로 선회하는...
은파금파 빛나는 바다에 꽂혔던 눈을 들어 절벽을 바라본다. 태종대다. 바닷물에서 수직으로 수 십 미터 위에 자살절벽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자리에 전망대가 들어섰다. 꿈을 잃은 사람들이 현실의 막장까지 살다 지쳐 쓰러진 곳이 자살절벽이었다. 사랑을 잃고, 돈을 잃고, 사람을 잃고, 마지막에는 희망도 꿈도 모두 놓아버린 그들은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마지막 순간 무엇을 떠올렸을까. 아니다. 그런 생각 보다는 ‘그들 생의 처음에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목적지인 부산항이 얼마 안 남았다’는 선장님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태종대 자살절벽을 돌아 부산항으로 들어가는 그 길목에 진풍경이 펼쳐졌다. 바다에서 이어지는 산 중턱까지 작은집과 낡은 아파트의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산 구비 하나 사이를 두고 꿈을 잃은 사람과 꿈을 놓치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등대 사이로 난 뱃길은 유람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곳이 자갈치시장이고, 영도다리이고, 부산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