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밥이라도 이밥처럼 먹어봤으면
조밥이라도 이밥처럼 먹어봤으면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1.09.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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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이 있는 창 49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조팝나무(Bridal wreath, Spiraea)

신록의 오월 멀리서 보면 한 무더기 두 무더기 세무더기… 싸락눈이 쌓인 덤불이 있어 다가가니 눈같이 하얀 조밥(조팝)이 피었다. 참 이쁘다! 우리집 앞뜰에도 봄, 여름 한철 조팝나무가 수많은 꽃눈을 달고 하얀 눈을 뒤집어 쓴 듯, 하얀 불을 밝힌 듯, 하얀 면사포를 쓴 듯, 출렁이는 공작꼬리를 한 채로 가까이 다가가 맡으면 수수한 향내를 안겨주며 눈길을 끌던 나무-조팝나무-가 있다. 지난 해 고국에 갔다가 왔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 넓지 않은 앞뜰에 위치한지라 아내가 하얀 새 차를 사고서 긁힘을 막기 위해 그 치렁치렁 주저리주저리 삼단같은 머리에 눈꽃을 달던 조팝나무를 사정없이 사지(四肢)를 쳤다. 그야말로 흉물스럽게 해 놓았다. 화가 났지만 그냥 삭일 수밖에… 한 나무가 자라서 수형을 갖추어 자라기까지는 수년(數年)이 걸림을 알기에 가급적이면 잎, 가지, 열매(종실) 단 자리를 전정가위로 자를 때 함부로 하고 싶지 않다. 사정없이 자르고, 사정없이 버리고 돌아서는 것이 나의 체질이 아닌지라 살면서는 옆에 있는 사람이 많이 힘들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산과원 홍릉숲에도 월곡 가는 내림 산책길 중간쯤에 어린 조팝나무에 흰 꽃이 피곤하였다. 그러고 보니, 월곡 근처까지 가고 오는 길에 쉬땅나무, 백당나무, 조팝나무, 일본목련, 애기말발도리, 팥배나무, 귀룽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들이 하얀 꽃을 달았었지. 입하(立夏)를 지난 오뉴월 하얀 꽃등을 켜는 이 나무들 모두 잘 있는지 보고 싶다.   

 

조밥이라도 이밥처럼 먹어봤으면

겨울지나 보릿고개를 넘으면
밥 짓는 마을의 아침, 저녁 연기가 
그리 그리울 수가 없었어

강원도 산골마을 한 아가씨
쌀 한 말 먹고 시집 간다던 그 아가씨

강냉이 하모니카를 잘도 불었다지
쌀밥은 그만두고 수수밥, 조밥도 
많이만 먹어봤으면 좋겠다던 
눈물짓는 그 아가씨

조팝꽃 피는 희디 흰 세상
소박을 맞고 행여 그 보릿고개
넘어오지 않게 해 주소서!

 

조팝꽃 섬

내 자주 가는 세미트리에
조팝꽃 섬 하나 생겼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이 출렁여서
가슴을 적신다

그 섬에 살고 싶다

하얀 포말도 되었다가
오월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되었다가
조팝꽃 지는 날

내 섬도 하나 사라질지도 모르는…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

/나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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