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의 문화칼럼
김도언의 문화칼럼
  • 나무신문
  • 승인 2008.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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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시기가 늦었음을 한탄한다는 말이다. 확실히 어떤 일에는 적기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생물학적인 조건에 의해서 명백하게 그 일의 효용이 강제되고 결과까지 예정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 그렇다. 이를테면 젊은 나이인 산모에게서 나온 아이가 그렇지 않은 산모에게서 나온 아이보다 육체적으로 양호할 가능성이 좀더 높다는 것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의학적 사실로 간주된다.

아이를 가지려면 빨리 갖는 것이 좋다는 것은 주변 지인들의 경험칙으로도 매우 설득력 있는 말이다. 비근한 예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남자들에게는 민감한 문제인 입대가 바로 그것이다. 군대는 멋모를 때 빨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는 것은 내 경우를 비추어보았을 때에도 맞는 말이다. 나이 먹어 입대를 해서 훨씬 나이 적은 선임병에게 하대를 당하는 설움은, 엄격한 위계를 존중해야 하는 군조직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몹시 분하고 씁쓸한 일이다. 선임병에게서 혹여 “아니꼬우면 빨리 오지.”라는 말까지 들으면 그 설움은 배가된다.

그러나 이처럼 조건으로서의 시간과 관련해 그 효용을 인정해야 하는 경우는 사실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 꼭 그때 반드시 그 일을 했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다. 모든 일은 여전히 언제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절망과 무기력에 빠진 이들에게는, 이런 말이 귀에 잘 들리지 않는 듯하다.

지난 대선 기간 중, 공당의 후보들이 공히 해결사임을 자처했을 정도로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한 양상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 구직자들은 여전히 우울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사회적 현실은, 청년의 열정을 충분히 위축시키고 짓누를 만하다.
나 역시도 주변에서 한참 땀 흘리며 일해야 할 많은 후배와 동기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을 많이 본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이미 늦었다고 한탄하는 것은 가장 뻔뻔스럽게 자신의 무능력과 무기력을 드러내는 일이다. 늦게 입사한 이들의 업무충실도나 직업만족도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어떤 연구기관의 조사결과가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는 인내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한 재능에 속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