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수종사 찻물이 식기 전에
경기도 남양주-수종사 찻물이 식기 전에
  • 나무신문
  • 승인 2007.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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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매몰되고 나태와 지루함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나는 여행을 떠난다. ‘지금 같이만 살면 되지’라는 생각에 나의 안부를 묻고 스스로를 위로할 때 나는 절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칼바람 앞에 눈보라 맞으며 서고 싶다. 맨살에 서릿발이 박히고 눈꽃이 피어날 때 투명한 얼음덩이가 되겠다. 마침내 쨍 한 햇빛 줄기에 정수리를 쪼여 창창이 조각나고 싶다.

겨울 강을 거슬러 도착한 곳은 수종사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들려서 절 이름이 ‘수종사’다. 볍씨만한 물방울에서 산을 울리는 종소리를 상상할 수 있었던 옛 사람의 생각을 내 마음에 담을 수 있을까.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 고개가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길은 넓고 험하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에 팍팍해진 다리를 원망해 본다. 겨울 계곡은 메말랐는데 내 등골에서는 땀이 계속 흐른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게 산길인데 수종사까지 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평지 하나 없는 산길을 오르자니 숨이 차다. 숨을 돌릴까 마음먹는 차에 눈앞에 흰색 불상이 나타났다. 불상의 자비로운 얼굴이 터질 것 같은 내 심장에 평온을 가져다준다. 계단만 올라가면 절이다.

수종사 절 마당에 서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풍경이 보인다. 그 풍경 때문에 산을 오르며 내뱉었던 불평의 마음은 사라지고 넉넉한 마음이 생긴다. 절집 계단에 앉아 산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에 땀을 식힌다. 팍팍한 다리를 두드려본다. 가파른 산 위에 자리 잡은 절은 아담하다. 고개 돌려 시선을 줄 곳도 몇 개 없다. 다만 속 시원하게 열린 절 마당 앞 풍경이 사람들 눈길을 한 곳으로 모은다.

절 마당에 지어진 집으로 사람이 끊임없이 드나든다. 뭐 하는 곳일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사람들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곳은 차를 마실 수 있는 집이었다. 수종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차를 대접하고 있었다. 여행객들이 직접 차를 우려 마실 수도 있고, 그곳에 있는 분이 차 우리고 마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넓은 창밖으로 저 멀리 산줄기 능선이 출렁거리는 물결 같다. 희미하게 흐르는 산의 강 앞으로 큰 강줄기가 흐른다. 시선을 절 찻집으로 이끌어오면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방안은 벌써 봄 같다.

햇볕 가득한 방에 앉아 차 잎을 우린다. 차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향기로 먼저 차를 느낀다. 뜨거운 찻물이 찬 속을 녹인다. 찻물이 식고 몸은 따듯해진다. 그렇게 찻잔을 비우는 사이 먼 산 해 그림자가 길어진다. 찻잔에 반짝이는 햇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찻잔에 찻물을 따르는 소리가 공명처럼 들린다.
아무도 없었다면, 아무도 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면, 그 옛날 세조가 들었던 그 물방울 종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