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야구의 매혹
문화칼럼-야구의 매혹
  • 나무신문
  • 승인 2007.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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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구경꾼의 입장에서 얘기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다. 야구팀의 순위나 전적, 선수들의 타율과 방어율 등을 전혀 꿰고 있지 못하고 있음에 불구하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야구라는 경기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 자체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정중동의 육체성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인 야구는 인간이 개발해낸 스포츠 중에서 가장 지적이고, 가장 섬세하며, 가장 우아하다. 방망이를 들고 있는 타자나, 그 타자와 맞서고 있는 투수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불안, 고독, 설움은 그들의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이라는 것. 우리는 우리에게 날아오는 150km의 패스트볼을 될 수 있는 대로 정확히 맞춰 멀리 날려 보내야 하는 것이다. 헛스윙을 하게 되면 곧바로 아웃이다. 초조하게 다음 순번을 기다리면서 만회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감독이 교체사인을 내면 그마저도 난망이다.

9회말 쓰리아웃으로 ‘게임 셋’이 되는 야구는 ‘어필’이 가능한 ‘고독의 투쟁’이다. 다시 말하면 야구는 고독이 고안해낸 스포츠다. 고독의 흔적들은 곳곳에 있다. 야수들의 그라운드보다 봉긋하게 튀어 오른 투수의 마운드는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곳에 ‘마운드’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것 역시 얼마나 인간적인 배려인가. 파울플라이는 얼마나 희극적인가. 홈런은 얼마나 장엄한가. 희생플라이는 얼마나 거룩한가. 병살타는 또 얼마나 가혹한가. 

그런 의미에서 야구는 햇살이 밝은 날, 보아야 한다. 그래야 야구가 전하는 풍성한 느낌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아주 흐린 날이거나 비가 흩뿌리는 날의 야구는 생기를 잃는다. 컬러로 제작된 애니매이션에 흑백 필터를 덧댄 것과 같다.
야구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들이 일시에 제거되는 것이다. 지치고 피로할 때 나는 가끔 밝은 야구장을 상상한다. 3루 쪽 관객석에 앉아 있는 나 자신. 하위 팀들끼리 맞붙은 경기라서 그런지 관객은 거의 없다. 나는 한껏 이완된 자세로 길게 몸을 늘어뜨리고 그라운드를 내려다본다. 햇살이 나를 알맞게 고양시킨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본다. 다섯 경기째 안타를 치지 못하고 있는 선수의 한숨소리를 듣는다. 파울볼이 그물망에 하나 둘씩 쌓인다. 1회를 버티지 못하는 투수의 절망스런 표정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삶이, 삶의 하오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