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은행나무가 아름다운 용문사
오래된 은행나무가 아름다운 용문사
  • 나무신문
  • 승인 2007.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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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장태동

절을 찾아다닌 지 18년. 불교에 관심이 있었다거나 우리나라 전통건축을 공부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절 마당에 서면 바람이 인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계절에 상관없이 서늘한 바람이 분다. 미륵전에서도, 대웅전에서도, 산신각에서도, 이름 없는 돌탑부터 국보니 보물이니 하는 품계를 받은 돌탑까지…. 그 바람에 티끌만한 죄까지 씻기고 가식의 얼굴이 깎이는 느낌이었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속과 비속이 나눠지고 사대천왕이 호령하는 또 하나의 문을 통과하면 번뇌는 사라지고 평상심을 얻었다. 아마도 이런 느낌 때문에 절에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용문사 천 년 은행나무를 찾아 떠났다.
산 속에 있으나 산 속 같지 않은 용문사는 날카로운 각오도 없고, 제 살 깎는 인고도 없다. 평범한 걸음으로 왔다가 그저 ‘아! 좋다.’라는 말 한 마디만 남기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뒷모습과도 닮았다.

그렇게 천년 동안 사람들을 맞아 준 신령 같은 존재가 용문사 절 집 앞에 있는 천년 묵은 은행나무다. 나라를 잃은 마의태자가 속세를 떠나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 이곳에 지팡이를 꽂고 길을 떠났는데 그 것이 자라나 나무가 됐다는 전설이 그 은행나무에 붙었다. 신령스런 전설이 오히려 이웃집 소 울음 같이 들린다.

사람들은 그 나무 앞에서 소원을 빈다. 거대한 뿌리와 하늘을 향해 뻗은 굵은 가지들 모양 만으로도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 된다. 사람들은 그 신령스러움에 두 손을 모은다. 마음 약해 기대는 게 아니라 사람을 믿고 이웃과 정을 나누고 살아가는 인간 본성의 평상심을 그 나무와 주고받는 것이다.

겨울 용문사는 일주문부터 천 년 은행나무가 있는 곳까지 가는 침엽수 숲길이 인상적이다.  속과 비속이 일주문에서 완벽하게 나뉘는 느낌이다. 겨울이라서 오히려 더 푸르게 빛나는 침엽수 숲길은 일주문부터 시작된다. 눈 쌓인 나뭇가지와 푸른 잎이 어울린다.
길 옆 계곡 돌무더기 위에도 눈은 쌓이고 그 아래로 물이 흐른다. 살 에는 찬바람이 불어도 그 숲길은 오히려 따듯하다. 코끝이 찡하고 시린 손끝이 절여도 동동거리거나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사람들도 다 그렇게 걷거나 멈춰 있다.

눈 쌓인 숲길을 빠져 나오면 눈앞에 거대한 은행나무가 보이고 그 뒤로 절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용문사 이곳저곳을 거닐다 절 큰집 앞 나무에 열린 작은 고드름 꽃들을 보았다. 겨울은 이렇게 꽃을 피우는구나!
절집 앞 지붕 낮은 찻집에서 겨울 산사여행을 마무리한다. 장작불이 타오르는 옆 자리에 앉아 따듯한 찻잔에 손을 녹인다. 마음도 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