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족 혹은 전후의 그림자
사양족 혹은 전후의 그림자
  • 나무신문
  • 승인 2007.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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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양>이라는 일본 소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적 특징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일본에서도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켜서 작품 속의 등장인물을 흉내내는 ‘사양족’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기울어지는 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사양>은 패전 직후 일본이 스산한 분위기를 주조음으로 하고 있다. 우선 이즈 현의 몰락한 가문 출신인 두 모녀와 등장한다. 늙은 어머니와 작품의 화자인 딸 가즈코가 그들이다. 어머니는 딸 가즈코에게 몰락한 가문의 지난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최후의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강조한다.
이런 가즈코에게는 문학을 공부하는 나오지라는 남동생이 있다. 그는 문학적 스승인 우에하라의 영향으로 광가난무식의 향락적이고 파괴적인 삶을 살아간다. 결국 나오지는 다자이 오사무가 나중에 그러하는 것처럼 삶과 문학에 좌절한 나머지 자살로서 삶을 마감한다. 나오지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구절은 ‘저는 귀족입니다’이다. 귀족으로서의 정신적 고결함이 삶을 버리는 순간까지 그의 의식을 강박했던 것이다.
가즈코는 어머니와 나오지가 차례로 죽자 동생의 스승이었던 우에하라의 정부로 들어간다. 그것은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의식적으로 버리는 반동적 행위이다. 하지만 우에하라는 가즈코를 돌보지 않고 향락적이고 무책임한 생활만을 계속한다. 귀족 출신의 가즈코는 우에하라의 난폭한 키스를 받으면서 굴욕적인 눈물을 흘린다. 가즈코는 결국 유부남인 우에하라의 아이를 낳음으로써 그녀를 괴롭힌 귀족의 의무로부터,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가즈코는 우에하라에게 보내는 편지에게 결론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낡은 도덕과 끝까지 싸우면서, 태양처럼 살아갈 작정입니다.”
작품은 그 편지와 함께 끝난다. 사양은 기울어졌지만 그것은 존재감을 아프게 일깨우는 각성의 고통을 선사한다. 일본현대문학의 개성은 다자이 오사무 같은 난폭한 허무주의자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그 겹을 충분히 두텁게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