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향수’ 정지용의 초가
비에 젖은 ‘향수’ 정지용의 초가
  • 나무신문
  • 승인 2007.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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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유행가 가락이 흘러나온다. 나는 지금 가을비를 맞으며 누구도 관심 없을 것 같은 시골 마을로 가고 있다. 빗방울 무게에도 힘없이 떨어지는 은행나무 노란 잎이 아스팔트길 위에 나무 둘레에 논둑 위로 날린다.

버스가 지날 때 마다 가지들은 더 크게 흔들리며 나뭇잎을 떨어뜨리나 보다. 빗방울이 차창에 가로선을 긋는다. 버스 뒷자리 작은 창을 열었다. 비에 젖은 흙냄새가 고향 같다.

오늘 찾아가기로 한 곳은 시인 정지용의 고향 충청북도 옥천, 옥천에는 정지용의 흔적들이 많이 있다. 그의 가족과 후배, 마을 사람들이 뜻 모아 만들어 놓은 생가, 시비, 기념비, 동상, 작은 공원… 사람들은 정지용을 잊지 않고 있었다.   

군청 사거리에서 옥천 구읍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걷기에는 먼 길이었다.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 그 길에 지용이 다녔던 죽향 초등학교와 지용이 1918년 서울 휘문고보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던 생가가 있다. 생가 앞으로 그의 시 <향수>에 나오는 실개천이 흐른다.

“얼룩배기 황소 해설피 금빛 울음을 울던”개천 가 집들이 있다.

옛 실개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당시 개천에 놓여있던 돌다리뿐이었다. 지금은 “청석교”라는 이름의 새 다리가 놓여 있다. 옛날에는 지금 청석교 자리에 푸른빛이 감도는 돌로 다리를 놓았다.(그래서 지금 다리 이름도 청석교다) 새 다리가 생기자 그 돌다리는 개천가에 방치됐었고, 생가 복원 당시 생가 울타리 안으로 옮겼다. 지금은 생가 옆 소공원에 놓여 있다.

지용의 아버지는 약재상을 했었다. 원래 지용의 집은 현재 생가에서 좀 떨어진 수북리(동네 사람들은 “꾀꼬리”라고 부른다)에 있었는데, 약재상을 하기 위해 당시 옥천에서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았던 지금 생가자리로 집을 옮겼다.

당시 집은 본채 두 칸에 별도의 사랑채가 있었다. 본채를 바라 봤을 때 왼쪽 방은 약재상을 하던 지용의 아버지가 쓰던 방이다. 오른쪽 방이 지용이 생활했던 방이다. 그는 이후에 서울 유학, 일본 유학 당시 방학 때 내려와서도 그 방에서 지냈다.

지용의 방 옆 작은 마루턱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양철지붕 골마다 타고 내려온 빗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마당에 홈을 파 놓은 기억이 오버랩 된다. 엄마 팔 베고 마루에 드러누워 빗방울이나 하나 둘 세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