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의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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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07.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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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근처럼 천천히 제맛을 드러내는 책

오늘은 우리나라의 아주 특이한 스테디셀러 한 권을 소개하기로 한다.

이본(異本)만 40종이 넘게 나와 있는 ‘채근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62년, 현암사가 시인 조지훈 선생(1920~1968)의 역주본을 출간한 판본이다.

수양과 수신, 처세의 경구들을 담고 있는 ‘채근담’은 그로부터 꼬박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읽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이본을 포함 매년 10,000부 가까이 팔린다고 하니 이 고전의 영묘한 강기를 짐작할 만하다. 사실 지금처럼 위축되어 있는 출판시장에서 신간 10,000부를 파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초판본에 쓴 ‘머리말’에 의하면 조지훈 선생이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열일곱 살 때라고 한다. 그때는 이 책의 진미를 미처 알지 못했다고 선생은 고백한다.

이후 스물두 살 때 두 번째로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선생은 “채근담을 통하여 느끼는 둔세(遁世)의 맛과 자적(自適)의 멋이 슬픈 마음을 위로하는 정다운 벗이 된다는 것”을 체득한다.

‘채근’이라는 말이 가리키듯 이 책은 나물 뿌리를 씹는 맛과 같은 담담한 매력을 그 속에 간직하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와 맛을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다.

권말(卷末)에 실린 해제를 보면 ‘채근담’이란 책명의 출처가 송대 유학자 왕신민의 “사람이 나물 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으면 곧 백 가지 일을 가히 이루리라”는 말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조지훈 선생은 이를 “사람이 일상에서 초근목피와 같은 조식을 달게 여겨 그 담담한 맛에서 참맛을 느끼고 모든 일을 참고 견디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채근담’의 저자 홍자성은 중국 명나라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는 생존연대와 직업 등 생애의 이력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채근담’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그의 사상은 유교를 근본으로 하면서 노장(老莊)의 도교와 불교의 사상까지 융화한 깊고 융숭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 무명소졸의 저서가 40년 동안 꾸준하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채근담’은 우리 출판 역사의 한 사건으로 놓이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