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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의 나이테를 품은 한강 기슭 뻘밭을 보다

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시 강서구 나무신문l승인2018.04.27l수정2018.04.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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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습지생태공원. 사진 상단에 행주산성이 보인다.

강기슭 모래밭이 강 따라 길다. 연둣빛 수양버들 가지가 강물 위에서 낭창거린다. 모래밭 옆은 뻘이다. 뻘 옆은 버드나무 숲이다. 콘크리트로 덮인 한강 둔치 말고, 있는 그대로의 한강 풍경을 보러 한강 하류 강서구 방화대교 주변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 50㎞ 정도 서쪽으로 강물이 흐르면 한강은 바다가 된다.      

▲ 방화대교 아래 한강 풍경. 강가의 모래밭과 뻘밭 숲이 어울렸다.

뻘과 모래밭이 남아 있는 강기슭
고려 공민왕 때 이야기다. 우애 깊은 형제가 길을 나섰다. 그 길에서 아우가 금덩어리 두 개를 발견하고 하나는 형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는 자기가 갖기로 했다. 한강 공암나루에 도착한 형제는 강을 건너려고 나룻배에 올랐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는데 아우가 갑자기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형이 그 이유를 물으니 아우는 금덩어리를 주워 나누어 갖기 전에는 형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는데 금덩어리를 나누어 갖은 뒤에는 그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형도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 한강에 모래밭과 뻘이 그대로 남아 있다.

‘투금탄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이 이야기에서 형제가 한강에 도착해서 나룻배를 탄 공암나루는 지금의 방화대교에서 가양대교 사이에 있었던 나루다. 방화대교 남단 동쪽 한강 기슭에 ‘투금탄 이야기’의 주인공 두 형제의 모습을 만든 조형물이 있다.  

‘투금탄 이야기’를 품은 조형물 앞 데크에 서서 한강을 바라본다. 콘크리트로 덮인 한강 둔치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인 한강 기슭 풍경을 볼 수 있다.  

▲ 방화대교 아래 한강. 뻘과 강가의 숲이 그대로 남아있다.

강기슭으로 밀려오는 강물의 파문이 모래밭을 만나 잦아든다. 모래밭에 박힌 자갈 위로 한강물이 찰랑거린다. 모래가 없는 곳은 뻘이다. 물이 지나는 골도 보인다. 뻘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흔적이 보인다. 

바다가 들고 나면서 한강물도 불고 준다. 그 시간의 흔적이 강기슭 모래밭과 뻘에 나이테처럼 남았다. 

물결의 나이테가 남아 있는 강기슭에 수양버들이 자란다. 수양버들 가지가 강물에 연둣빛 머리카락을 푼다. 

▲ 수양버들

한강의 수양버들은 옛 사람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양천현령을 지낸 겸재 정선의 그림 ‘소악후월’ ‘안현석봉’ 등에 보면 지금의 강서구 앞을 흐르는 한강 일대의 풍경이 잘 보인다. 그 그림에 낭창거리는 수양버들이 있다.

그림 속 수양버들처럼 바람에 한들거리는 수양버들이 강가에 홀로 서 있거나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신록 물든 한강 둔치에 사람들이 제법 많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사람들 표정이 고목의 껍질을 뚫고 새순을 내미는 봄을 닮았다.  

▲ 수양버들 숲 위로 방화대교 아치가 보인다. 북한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강서생태습지공원
방화대교 남단 한강 기슭에서 찰랑거리는 강물의 소리를 들으며 모래밭과 뻘밭을 걷는 일은 옛 한강으로 떠나는 시간여행과 같다. 

시간여행을 마치고 방화대교 남단 서쪽에 있는 강서생태습지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서습지생태공원은 10여 년 전에 한강 강기슭에 만든 공간이다. 습지와 물웅덩이에 습지식물을 심는 등 갖은 노력으로 생태계를 복원한 것이다. 

▲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본 행주산성

자생의 힘으로 복원된 자연의 품에서 여러 생명이 산다. 개개비 물총새 쇠백로 중백로 왜가리 등 여름철새가 이곳을 찾는다. 겨울에는 청둥오리 쇠오리 비오리 황오리 댕기흰죽지 논병아리 큰기러기 등을 볼 수 있다. 

▲ 강서습지생태공원에는 맹꽁이주의 표지판이 있다.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도 다양하다. 봄에는 쇠뜨기 애기똥풀 참새귀리 냉이 제비꽃 봄맞이 꽃마리 주름잎 씀바귀 서양민들레 등이 수양버들 아래 자라난다. 여름에는 산조풀 마디풀 소리쟁이 쇠비름 돌콩 애기땅빈대 부처꽃 등이 피어난다. 가을에는 바랑이 물억새 갈대 개기장 가을강아지풀 개여뀌 마름 미국쑥부쟁이 등을 볼 수 있다. 

숲이 있는 곳에 곤충이 깃들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봄에는 꽃등에 무당벌레 노랑나비 벌 등이 숲의 주인이다. 여름에는 네발나비 뿔나비 잠자리 베짱이 방아깨비 등이 초록의 자연과 함께 한다. 가을에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곤충은 왕사마귀 좀사마귀 등이다. 

10여 년 전에 만든 강서생태습지공원은 철마다 제 모습을 바꾸어가며 건강한 자연의 생태를 보여주고 있다.  

▲ 조팝나무꽃

조팝나무꽃과 버드나무숲
강물에 인 물결이 강기슭에 닿는 곳에 연둣빛 물 오른 수양버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그 숲이 하나의 생명체 같다. 

바람이 불면 수양버들 숲 전체가 일렁인다. 바라만 봐야하는 풍경이다. 그 숲으로 가는 길은 없다. 

공원으로 꾸민 한강둔치를 걷는다. 그곳에도 수양버들은 있고, 한들거리는 수양버들 가지 아래 오솔길이 났다. 

물웅덩이 주변으로 수생식물이 자라고 민들레가 피어 생동한다. 나뭇잎과 꽃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그 자체로 봄이다. 한시도 제자리에 있지 못한다. 나풀거리는 날갯짓으로 가늠할 수 없는 그들만의 길을 만들며 난다. 그 길 위에서 나비 두 마리가 앞서 날고 뒤따라 날며 봄을 희롱한다.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 조팝나무꽃이 무리지어 피었다. 어른 키보다 큰 조팝나무가 무리지어 피어난 길은 달콤한 향기로 가득하다. 이 보다 더 진한 봄의 향기는 없을 것이다. 어느새 나비가 그곳까지 따라왔다. 윙윙대는 벌과 등에도 무리지어 피어난 조팝나무 군락지를 떠날 줄 모른다. 

▲ 강서습지생태공원.

한강이 흐르는 서쪽으로 발길도 따라 이어진다. 땅에 낮게 엎드려 피어난 민들레 노란 꽃, 푸른 풀밭, 그 위를 수놓은 조팝나무 하얀 꽃, 그 풍경을 품에 앉은 수양버들 푸르른 숲, 달콤한 꽃향기와 푸르고 흰 빛으로 완성된 봄이 이곳에 가득했다. 

자전거가 오가는 길 옆으로 걷는데 ‘맹꽁이 주의’라고 쓴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맹꽁이들이 다니는 길이니 자전거나 사람이 오갈 때 맹꽁이를 밟지 않게 주의하라고 알려주는 표지판이었다. 흔히 볼 수 없는 표지판 문구에 혼자 웃는다. 웃고 있으니 그때서야 나도 봄 같았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나무신문  imwood@imwoo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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