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삼청동길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삼청동길
  • 나무신문
  • 승인 2007.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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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당홍엽(瓦堂紅葉)

   
가을, 삼청각 일화당 맞은 편 골짜기를 보면 가슴이 서늘해 진다. 나무와 숲이 꽃 보다 화려한 단풍을 피웠지만 아름답다는 생각 보다 숙연한 마음이 앞선다.

그 형형색색이 야단법석 시장통 아우성 같기도 하고 때로는 한을 풀지 못하고 죽어 가는 생의 비명처럼 느껴진다.

하기야 그렇게 절절하게 끓지 못한다면 어찌 꽃 보다 아름다우랴. 돌이켜 보건대 나 또한 절절하게 살지 못했으며, 지금 또한 그러하니 가을 숲을 마주보는 내 얼굴이 붉어지는 게 저 산 빛이 그래서가 아님을 내가 안다.

삼청각 숲 단풍은 북악 골짜기 중 하나인 삼청동길부터 시작된다. 걷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것 또한 이 길에 내려앉은 가을이다. 은행나무가 터널을 이룬 가을 삼청동 길은 노랗다.

나무 수만큼 늘어선 길 가 음식점과 카페 갤러리 또한 가을을 탄다. 사람들은 제 각각 다른 생각을 머리에 인 채 길을 걷거나 테이블 앞에 앉아 있겠지만 풍경을 바라보는 눈길은 하나다.

그 길 위에 선 연인들은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된다. 혼자 걷는 이들은 그 길에서 쓸쓸해지겠지만 쓸쓸함마저도 감미로운 고독으로 승화시키는 묘약이 은행나무의 노란단풍 아니던가.

 이렇듯 사람 사는 마을의 단풍은 사람 사는 모습과 닮았다. 손 내밀어 쉽게 만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고상하거나 절대적이지 않다.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마음에도, 재잘 대며 길을 걷는 여중생들의 들뜬 목소리에도 노랗게 물든 가을은 햇살처럼 내려앉았을 것이다.  

단풍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에 들지만 생명을 다하고 떨어진 잎 또한 땅이 피워 낸 또 다른 단풍과 다름없다. 낙엽 쌓인 길이 꽃무리보다 화려할 때가 있다.

삼청동길은 걷기에는 멀지만 단풍 때문에 걸을 만하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가을 숲의 절정을 볼 수 있는 삼청각이 있지 않은가. 그곳에는 전통한옥 양식의 건물들이 있고 건물들 사이로 길이 났다.

그 길은 온통 붉고 노란 단풍과 낙엽으로 뒤덮여 있다. 붉은 물이 기와에 ‘점·점’ 떨어질 것 같다. 북악의 한 골짜기 숲을 뒤덮은 단풍은 차라리 나무들이 벌이는 축전이다.

축제의 밤을 수놓은 불꽃들이 몇날며칠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것 같다. 바라만 봐야 하는, 그래서 동경할 수밖에 없는 비범한 자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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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