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대하여
‘욕망’에 대하여
  • 나무신문
  • 승인 2007.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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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의 응시

인간의 욕망은 선과 악의 층위, 다시 말해 양가적인 조건 아래에서 탐구되기 마련이다.

욕망은 어떤 면에서는 삶에 활력을 주는 필수적인 에너지를 수반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도덕의 경계를 무너뜨려서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에까지 손실을 끼치기도 한다.

어떤 사회학자는 욕망을 가리켜 사람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엔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모든 욕망은 불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안위와 이기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이 궁극적으로 예술적인 창조 행위나 사회적인 생산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발본적인 이기성까지 희석되지는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취하고 싶을 때 작동되는 것이 바로 욕망이라는 엔진인 것이다.

이러한 욕망이 통제되지 않고 이익을 노골적으로 취할 경우, 우리는 그것을 탐욕이라는 말로 구분해 부르면서 경멸한다.

그러므로 욕망은 대부분 아름답지 않다. 이성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욕망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 뿐이다.

한 욕망이 철저히 자신의 욕망을 은폐하고 다른 가치로 전회했음을 가장하는 데 성공했을 경우와, 처음부터 아무런 위장이나 가식 없이 욕망을 욕망의 문법으로 처절하게 추구했을 경우이다.

비단, 욕망의 문제뿐 아니라, 어떤 내재적 가치가 전면적으로 의미화 되기에 이르렀을 때, 그 가치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반사적으로 극적인 반전을 기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모든 욕망은 불결하다는 명제가 하나의 전제로서 별다른 저항없이 통용될 경우에 비로소 모든 욕망은 그러므로 불결하지 않다라는 反의 명제가 잉태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아는 인간이, 적극적으로 죽음을 수용하고 미화하려는 태도와 깊은 유사성이 있다.

나는 이것을 인간의 전복하려는 경향, 혹은 습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