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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까치 설날, 우리우리 설날

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북 청주시 나무신문l승인2018.02.19l수정2018.02.1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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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나무가 대청호를 바라보고 있다.

청주 문의문화재단지에 가면 옛 고향 마을이 생각난다. 꽁꽁 언 개울에서 썰매를 지치고 뚝방 위에서는 연을 날리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설날 아침을 깨우던 소리와 냄새는 지금도 생생하다.  

16~17년 만의 비지찌개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너무 흔하게 쓰인다. 하지만 문의문화재단지를 찾아가는 발걸음 앞에 그 말을 안 붙일 수가 없었다. 

한 16~17년 전이었다. 이곳저곳 여행하다 발길이 머문 곳이 문의문화재단지가 있는 문의마을 한 식당이었다. 

문의마을 주변에는 대청호와 문의문화재단지, 청남대 등 여행지가 있어 여느 시골마을 같지 않게 식당이 많다. 여러 식당에서 주요 음식 이름을 훑어보다가 비지찌개에 눈길이 꽂혔다. 그 집 비지찌개는 어릴 때 집에서 먹던 그 맛과 비슷했었다. 발효시킨 비지로 끓인 찌개 맛에 옛 추억이 얹혀 맛이 더 깊게 느껴졌었다.  

비지찌개는 발효시킨 비지로 끓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 종류다. 개인적으로 발효시킨 비지로 끓인 찌개를 더 좋아한다. 

보통 발효시킨 비지로 끓인 비지찌개는 발효할 때 나는 특유의 ‘향’이 있다. 굳이 ‘냄새’라고 하지 않고 ‘향’이라고 하고 싶은 건 순전이 그 어떤 음식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어떤 음식과 확실하게 구별되는 그 향과 맛 때문이다. 

집에서 비지찌개를 끓일 때에는 굵은 멸치를 넣기도 하고, 신 김치를 넣기도 하고, 콩나물을 넣기도 한다. 그 세 가지를 다 넣을 때도 있다. 

▲ 눈 쌓인 지붕과 대청호, 멀리 산줄기가 잘 어울린다.

추억의 맛을 찾아 문의마을에 도착했다. 옛날에 들렀던 식당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디쯤이었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집이 옛날 그 식당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주인이 바뀌었다. 옛날에는 손님들에게 비지를 공짜로 줬던 기억이 나서 지금 주인에게 물었더니 옛날 주인은 그렇게 했다고 한다. 맞다, 옛날 그 집이었다. 하지만 주인도 바뀌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바뀌었으니 과연 옛 맛을 볼 수 있을까?

상에 올라온 비지찌개는 발효된 비지로 끓인 비지찌개였다. 신 김치를 넣어 끓였다. 발효의 향과 비지의 식감이 신 김치의 맛과 어울려 추억을 불러온다. 16~17년 전 그 맛 보다는 순화된 맛이었지만 추억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했다. 그것 하나로 충분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 옛 집에 있던 광

썰매 지치고 연 날리던 아름다운 시절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으로 절기를 가늠하고 농사를 짓던 시절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어린 나이였어도 매년 돌아오는 설이 설렜다. 

설날 새벽을 여는 것은 벽 넘어 부엌에서 들리던 할머니와 엄마의 말 소리였다. 그저 ‘웅웅’대는 말소리의 공명이었지만 그 소리에 마음이 푸근했다. 아궁이에 지핀 장작불 연기 냄새는 구수했다.

삼촌들은 빗자루로 마당을 쓸었다. ‘쓱쓱쓱쓱’ 빗질소리가 멈춘 건 복조리를 팔러 온 아저씨 때문이었다. 복조리를 담은 지게를 지고 복조리를 팔러 온 아저씨가 신기했다. 시골 새벽 공기가 차가웠지만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을 보는 재미도 웬만했다.  

설날 차례 준비가 다 끝나면 삼대가 모여 차례를 올렸다. 유난히 알록달록한 요강과자를 먹을 생각에 입에 침이 고였다. 차례가 끝나고 만둣국을 끓여서 온 가족이 나누어 먹었다. 요강과자는 지금 생각해도 달고 맛있었다.  

들판에 햇살이 넉넉하게 퍼질 때면 꽁꽁 언 개울로 달려갔다. 기와집 초가집 돌담 흙담 골목을 돌아서 개울에 도착하면 벌써 나와 썰매를 지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 늘 푸른 나무 아래 눈 쌓인 초가지붕을 보면 옛 일이 그리워진다.

썰매 날은 굵은 철사와 낡은 스케이트 날 두 종류였다. 굵은 철사를 단 썰매는 속도는 느렸지만 회전성이 좋았다. 얼음을 지치던 썰매송곳(나무막대기 끝에 못을 박아서 얼음을 찍어 썰매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던 기구) 중 한 쪽 송곳으로 얼음을 찍어서 축을 만들고 다른 한 쪽 송곳으로 얼음을 지치면 원하는 쪽으로 금세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360도 혹은 그 이상의 제자리 회전도 가능했다. 스케이트 날을 단 썰매는 직진 속도는 뛰어났지만 회전성이 부족했다. 머리 굵은 형들은 외날 썰매를 탔다. 썰매송곳을 길게 만들어 썰매에 올라서서 타는 모습이 부러웠다. 

냇가 뚝방 위에서는 연을 날렸다. 바람을 제대로 탄 연은 얼레에 감긴 연실이 다 풀어지도록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고개를 끝까지 젖혀 연을 바라보며 ‘얼레질’을 하다보면 시간은 금세 흘러 어스름 저녁이 되곤 했다. 

▲ 고인돌과 초가

굵은 털실로 짠 방울모자를 썼지만 들판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막지는 못했다. 손등은 터지고 귓불은 동상이 걸렸다. 

집으로 돌아오면 고모들이 가마솥에 담긴 뜨거운 물과 샘터에 있는 차가운 물을 섞어 손과 얼굴을 씻어줬다. 동상 걸린 손은 따끔따끔하면서 간지러웠다. 

새까맣게 탄 아랫목은 할아버지 자리였고 나는 그 옆에 앉았다. 묵나물에 고추장 김치 청국장이 전부였지만 고봉밥은 금세 사라졌다. 배는 부르고 언 몸이 녹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곤 했다.   

▲ 장독대에 눈 쌓인 풍경이 포근하다.

초가에 매달린 고드름이 반갑다
문의문화재단지는 썰매 지치고 연 날리던 어린 시절, 옛 추억을 떠올리기 좋은 곳이다. 대청댐이 생기면서 수몰된 마을의 집과 유적, 인근 마을에 있던 옛 집 등을 볼 수 있다. 

문의문화재단지 부근은 조동이었다. 조동은 불당골 부수골 터밭 아래장터 등 네 개의 자연고을이 합쳐진 곳이었다. 마을 가운데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든 과수원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과수원을 ‘탱자나무과수원’으로 불렀다고 한다. 대청댐이 생기면서 마을이 물에 잠길 때 그곳에는 6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문의문화재단지로 들어가면 고인돌을 볼 수 있다 가호리에 있던 고인돌, 내수 학평리 고인돌, 미원면 수산2리에 있던 고인돌 등이 초가 앞에 놓였다.   

▲ 청주 부강리에 있던 고가를 문의문화재단지에 옮겨 놓았다.
▲ 초가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햇볕에 반짝거린다. 옛날에는 고드름도 따서 먹었다.

조선시대 숙종32년(1706년)에 문의현 북면 도화리(현재 문의면 도원리) 마장마을에 서덕길의 효행을 기리어 나라에서 세운 ‘서덕길 효자각’을 이곳으로 옮겼다.  

효심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이어져서 자식은 여막을 짓고 부모님 묘 옆에서 시묘(부모 상을 당하여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생활하며 묘를 보살피는 일)를 하며 살기도 했다. 강내면 한양 조씨 문중에서 시묘 했던 여막을 재현해 놓았다. 여막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묘 옆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생식을 하며 시묘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 문의현의 객사였던 문산관

흙벽돌로 지은 토담집, 시골마을에서 술과 국밥을 팔고 숙박업도 겸했던 주막집을 재현 한 집도 있다.  

청주 부강리 고가도 볼 수 있다. 이 집의 안채는 부용면 부강리(현재 세종시)에서 살던 김○○씨의 고가를 1995년에 이곳으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중부지방 양반이 살았던 집에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광 측간 등이 있다. 

문의현에 있던 옛 비석들을 모아 놓았다. 문산리 미천리 일대에 있었던 관찰사 또는 현령들의 공덕비와 선정비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인 문의 문산관은 조선시대 현종7년(1666년)에 세워진 문의현의 객사다. 대청댐 수몰지역에 있었는데 1979년 문의면으로 옮겼다가 1996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문의문화재단지를 다 돌아보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초가와 기와집이 어울린 풍경이 옛 고향 같았다. 그 앞에 대청호가 보이고 대청호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가 눈에 덮여 하얗다.

▲ 문의문화재단지와 대청호

옛 고향 산골마을의 겨울은 그랬다.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주차장으로 가는데 초가지붕에 매달린 고드름이 보였다. 오후의 햇볕에 반짝이는 고드름이 반가웠다. 초가지붕 처마에 줄지어 매달린 고드름이 발 같았다. 고드름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겠다는 동요 노랫말이 생각났다. 옛날 고향 마을 돌담 골목에서 놀던 그 여자애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까?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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