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그 바다
완도, 그 바다
  • 나무신문
  • 승인 2017.09.05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남 완도군
▲ 노을 비친 구름이 완도 바다 위 하늘에 떴다. 사진 아래 가운데 완도타워가 보인다.

나의 공식적인 첫 여행은 31년 전이었다. 친구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여행 말고, 당일치기로 잠깐 들렸다 오는 여행도 말고, 객기로 집을 나가는 ‘가출여행’은 더더욱 말고, 집에서 허락 받은 공식적인 1박 여행을 말하는 것이다. 혼자서 떠난 1박 여행이었다. 

지금도 여행을 다니며 살고 있는 이유가 그 첫 여행의 좋은 기억 때문일까? 그렇게 시작한 여행의 길에 완도도 있었다. 

완도와 내가 처음 만난 건 어림잡아 27~ 28년 정도 전인 것 같다. 그때가 정확하게 몇 살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돌아보면 그때 완도의 낮은 분주했고 밤은 풋풋했다. 

▲ 완도 바다

그때의 바다를 소환하다
사실 그때 완도까지 가는 길은 생각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해서 남자 세 명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완도가 고향인 여자의 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하룻밤 지냈던 기억이 난다. 

완도항이 보이는 산비탈 집이었다. 우리들은 항구로 걸었다. 땡볕 내리 쬐는 항구에 배가 즐비했고 사람들은 분주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억은 노를 저어 움직이는 좁고 긴 나룻배였다. 어찌해서 그 배에 올라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어 완도 바다로 나갔다. 

완도항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배를 세우고 낚싯대를 폈다. 사람 수보다 낚싯대가 적어서 나는 구경만 했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바다 풍경에 취해 금방 지나갔는데, 풍경도 눈에 익숙해지고 나니 시간이 엿처럼 늘어지기 시작했다.    

▲ 완도항 앞에 있는 섬, 주도. 주도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낚시에 흥미도 없었거니와 낚싯대도 없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낚시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은 사뭇 진지해보였다. 그 태도 앞에서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시간이나 얼마나 흘렀을까? 낚시를 즐기는 일행 중 어느 누구도 그때까지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다. 나는 돌아가자는 말을 애써 참고 참다가 물고기도 못 잡고 뭐하냐는 말로 그들이 돌아갈 구실을 던졌다. 그러고도 한 삼사십 분 정도는 그 바다 위에 더 떠있었을 것이다. 

▲ 완도 바다로 해가 진다

이어지는 기억은 완도가 고향인 여자의 집 마당이다. 여자의 아버지께서 양동이에 한 가득 물고기를 담아 수돗가에서 손질을 하고 있었던 모습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한 상 가득 차린 저녁상 앞에서 술도 밥도 푸짐하게 먹었다. 

밥상을 정리하고 항구로 ‘밤산책’을 나갔다. 항구 방파제에 앉아 술잔을 나누는 사이, 완도가 고향인 여자가 고향 친구들을 그 자리로 불렀다. 그 친구들 중에는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는데, 남자 여자가 아닌, 그냥 청춘이었다. 그들은 모두, 우리는 모두 푸르렀고 건강했다. 

▲ 완도항과 완도타워 밤풍경.

완도의 청춘과 외지의 청춘들이 모인 그날 밤 항구의 밤은 푸르렀다. 무슨 얘기를 하고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바다를 감싼 어둠이 빛나고 있었다. 어둠도 빛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다시 찾은 완도항
그 이후로 완도는 서너 번 더 갔지만 완도항과 그 방파제를 들르지 못했다. 그리고 올 여름의 끝자락, 마지막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완도항에 나는 서있었다. 27~28년 만에 처음이었다. 
저녁 8시가 넘어서 완도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바다가 어느 쪽인지도 몰랐다. 거리가 한산했다. 술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에게 항구가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남자는 술 냄새를 풍기며 항구로 가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줬다. 

▲ 완도항 가는 길. 완도타워가 보인다.

완도항 바다에 불빛이 빛난다. 주변 불빛이 바다에 드리워져 실제 빛보다 더 아름답게 바다를 물들였다. 항구 뒤 산 위에 불빛 반짝이는 건물이 보인다. 완도타워였다. 

가로등 불빛과 몇몇 문을 닫지 않은 가게에서 새어나는 불빛이 전부였던 근 30년 전 그 항구, 그 방파제의 밤풍경은 없었다. 방파제에 앉아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바다 어디쯤에서 내 청춘의 한 조각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날처럼 방파제에 앉아 소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여수가 고향인 그 여자도, 함께 했던 사람들도, 청춘도 없는 지금…

▲ 안개가 걷히면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 어두운 바다에서 건져올린 뿌듯한 하루를 싣고 안개를 가르며 항구로 돌아가는 배.

항구 바다 어디쯤에서 빛나고 있을 내 청춘의 한 조각을 뒤로하고 나는 숙소 옆 순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전라남도 소주인 잎새주를 한 잔 따라 쭉 마신다. 혀에 감기는 술 맛이 달다. 첫 잔의 향기가 사라질 무렵 다시 한 잔 쭉 마신다. 그리고 또 한 잔…그때까지 도가니에 담긴 순대국은 끓고 있었다. 순대국에 양념장을 얹는다. 뽀얀 국물이 금세 붉어진다. 밥을 말았다. 한데 어우러진 국밥을 앞에 두고 잎새주를 또 한 잔 마셨다. 무엇에 건배해야할지 모르는 마음은 밤처럼 깊어졌다.   

▲ 완도항과 완도타워.

새벽, 바다로 나가다
술잔이 늘수록 눈은 맑아졌다. 아줌마들이 청소를 시작했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그 집을 나와 맥주를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깨지도 않고 꿈도 꾸지 않았다. 한 번에 잠들어서 눈을 떠보니 새벽 5시였다. 

대충 씻고 항구로 갔다. 이유도 없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항구로 가는 길, 안개가 바다를 삼켰다. 어둠이 물러나면서 바다에 주둔한 안개가 더 명확하게 보였다. 밀려나지도 않고 밀려오지도 않는 안개 속에 근 삼십년 전 나룻배를 타고 나갔던 내가,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 시간이 있을 것만 같았다. 

▲ 완도가 바다와 안개에 휩싸였다.

좀처럼 물러날 것 같지 않은 안개를 뒤로하고 새벽식당을 찾아 항구 뒷골목을 어슬렁거렸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안개 낀 거리는 비현실적이었다. 그 시간, 그 거리에서 비현실적으로 불이 켜진 간판이 희미하게 보였다. 식당이었다. 

“뼈다귀해장국 하나, 소주 하나 주세요” 습관처럼 나온 말은 아니었다. 그래야만 될 것 같은 약속 같은 말이었다. 

새벽 술에 명징해진 정신으로 안개 속으로 걸어갔다. 걷다보니 다시 완도항이었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 바다와 안개와 섬

청산도로 가야만 했다. 바다를 장악한 안개가 뱃길을 막았다. 그래도 청산도로 가야만 했다.  안개는 습관처럼 걷히지 않고 약속처럼 사라졌다. 떠오르는 해가 안개를 밀어내고 있었다. 안개는 바다를 삼킬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항구를 출발한 배가 바다로 나간다.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청춘의 한 조각이 그 바다에 떠다니고 있었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