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낯선 풍경
세 가지 낯선 풍경
  • 나무신문
  • 승인 2017.03.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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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대구시 대구올레 6코스 ‘단산지 가는 길’
▲ 고분의 능선이 하늘과 닿았다.

#여행 #장태동 #대구올레 #단산지 #일제_동굴진지

대구시에서 낯선 풍경이 있는 여행지 세 곳을 묶어 길을 만들었다. 이름 없는 옛 무덤 214기가 있는 불로동고분군과 둘레길이 좋은 단산지, 일제강점기에 사람이 파서 만든 동굴진지 등을 돌아보는 대구올레 6코스 ‘단산지 가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약 6.8㎞ 정도 되는 길을 산책하듯 걷는다. 

▲ 굴다리를 지나 단산지로 간다.

동네 뒷동산 언덕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들
‘단산지 가는 길’의 시작지점은 불로동고분군 공영주차장 남서쪽 정자 앞 ‘대구 불로동 고분군 탐방로’ 이정표다. 

▲ 단산지 가는 길이 시작되는 불로동고분군 초입

이정표 뒤 언덕으로 오르는 풀밭 바닥에 납작한 돌을 깔아 길을 냈다.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봉긋봉긋 솟은 고분이 모여 있는 언덕에 다다른다. 

고분이 모여 있는 언덕은 동네 뒷동산이다. 아이들 놀이터이자 마을 주민들 산책로다. 아이들이 고분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거나 고분 뒤에 숨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 

▲ 나무 한 그루 고분들 사이에서 푸르다.

뒷짐 지고 게으르게 걷는 중년의 사내들, 지팡이 짚은 백발의 노인, 팔을 90도로 접은 채 앞뒤로 힘차게 흔들며 걷는 아줌마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걷는 아가씨들... 삼국시대 무덤의 주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고분이란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 가운데 묻힌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무덤의 주인을 모르는 무덤을 말한다. 

무덤에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 알면 묻힌 사람의 이름을 따서 무덤 이름을 짓는다. 예를 들어 경주의 많은 고분 가운데 이름이 확실하게 밝혀진 무덤은 딱 하나 밖에 없다.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묘다. 보통 태종무열왕릉이라고 부른다. 태종무열왕릉 이외에도 이름이 붙은 능이 있지만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냥 예로부터 그렇게 부르던 관행대로 민간에서 그렇게 통하는 것이다. 

▲ 도시를 바라보는 고분

또 무덤 벽에 있는 천마도에서 이름을 딴 천마총처럼 무덤에 그려진 벽화나 소장품 등의 특징을 따서 무덤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불로동고분군에는 214기의 무덤이 있지만 모두 주인을 확인할 수 없어 고분이라고 이름을 짓고 그 앞에 숫자를 붙여 무덤을 구분한다.   

불로동고분군은 5세기 전후인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금호강과 그 주변 평야지대에 정착해서 살던 토착세력의 지배층들의 무덤으로 관련학계는 추측하고 있다. 

▲ 불로동고분군. 고분 사이로 걷는다.

무덤은 대부분 지름 15~20m, 높이 4~7m 정도다. 무덤에서 금제, 금동제 장신구와 철제무기, 무늬를 새긴 토기 등이 나왔다.      

거대한 무덤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으면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 낯선 풍경이 신선하다. 

멀리 대구를 품은 산줄기들과 도심이 보인다. 고분이 있는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해가 점점 기운다. 

뒷동산 고분들 사이에서 놀던 아이들이 마을로 내려간다. 언덕의 풀들이 바람에 건듯 흔들린다. 무덤의 주인인 삼국시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내일 또 놀러오라고 인사를 하는 것 같다. 

▲ 단산지

단산지 호수에 내려앉은 노을 
불로동고분군 다음에 나오는 곳이 단산지다. 봉무공원에 있는 호수인데 호수 둘레를 도는 길이 인상적이다. 

단산지에 올라서면 왼쪽에 제방이 보인다. 제방에 난 길로 걸으면 호수를 오른쪽에 두고 걷게 되고, 제방으로 접어들지 않고 직진하면 호수를 왼쪽에 두고 걷게 된다. ‘단산지 가는 길’은 제방길로 접어들지 않고 호수를 왼쪽에 두고 걷는 길이다. 

▲ 길을 따라 단산지를 한 바퀴 돈다.

오르막길 없는 평지이므로 편하게 걷는다. 평일인데도 호수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청년들 무리, 운동하는 아줌마, 익숙한 걸음으로 둘레길을 걷는 청춘남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년의 남자들,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일가족 여행객들…

그들이 바라보는 호수에 노을 피어나는 하늘이 담긴다. 호수를 감싸고 안은 산과 숲의 그림자도 함께 비친다. 밑동이 물에 잠긴 나무의 그림자가 수면에서 흔들린다. 수면 위 공중에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건 억새다. 

▲ 단산지 억새

해가 기울수록 하늘빛이 풍성해진다. 울긋불긋한 하늘빛이 고스란히 호수에 번진다. 실제와는 다른 느낌의 풍경이 수면에 담긴다. 이 곳,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존재를 결정짓는 건 시간이 아닐까? 

노을 피어난 하늘이 담긴 호수를 바라보며 걷는 사이 단산지 제방에 도착했다. 제방을 건너면 처음에 단산지에 도착했던 그곳이 나오지만 ‘단산지 가는 길’은 또 다른 낯선 풍경으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 단산지에 노을이 비친다.

일제강점기에 사람이 만든 동굴진지

▲ 대구 봉무동 일제 동굴진지.

단산지 제방길로 접어들지 않고 마을로 내려가는 샛길로 빠진다. 단산지 아랫마을 식당 거리를 지나 도착한 곳은 ‘봉무동 일제 동굴진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은 주민을 강제로 동원해서 산에 동굴을 파게 했다. 일본군의 총칼 앞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피땀 흘리며 동굴을 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든 동굴은 일본군의 군사시설로 쓰였다. 동굴은 입구가 두 개인 ‘ㄷ’자 형으로 판 진지였다. 모두 10개의 동굴진지가 있다. 

동굴진지가 있는 산기슭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왼쪽에는 도랑이 있다. 동굴진지가 있는 산기슭 길이 끝날 무렵 도랑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큰길로 나가서 ‘단산지 가는 길’의 종점인 봉무정에 도착했다. 

봉무정은 조선시대 후기에 지은 건물이다. 봉무정 주변에는 봉무토성과 왕건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독좌암이 있다. 

▲ 도토리묵밥. 밥은 차조로 지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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