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 1박2일
교동도 1박2일
  • 나무신문
  • 승인 2017.03.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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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인천 강화도
▲ 교동도 대룡시장 2층집

#여행 #장태동 #인천 #강화도 #교동도 #대룡시장

강화도는 심리적 거리는 가까운데 실제로는 멀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타고 한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강화도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서울에서도 영등포나 신촌까지 가야 강화도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지하철로 강화까지 가는 방법은 없다. 서울 노량진에서 직선거리로 50㎞ 정도 되니까 자가용을 타고 가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린다. 

강화도에서도 20㎞ 정도 더 들어가는 교동도에 갈 일이 생겼다. 강화도에 사는 지인을 찾아가는 길, 동행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대룡시장 
일행과 검암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검암역 부근에 사는 일행이 자가용을 가지고 간다고 했다. 지하철 9호선을 타고 김포공항역에서 내려 검암역으로 가는 공항철도로 갈아탔다. 

오랜만에 화창하고 따듯한 날이었다. 꽃샘추위가 있다고 했지만 먼 도로 위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맘때 멀리서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는 그 자체로 봄이다. 봄이라고 말하면 떠오르는 게 많지만 봄볕 아래 하늘거리는 아지랑이만큼 봄 같은 게 없다. 강화로 가는 길에 아지랑이를 보았다.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들어갔다. 강화읍내를 지나서 교동대교를 건넌다. 이 다리를 건너면 교동도다. 교동도 대룡시장에 지인이 산다.   

▲ 교동도 대룡시장 골목 풍경

대룡시장은 6.25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피난 온 주민들이 만든 시장이다. 전쟁 때 잠시 머물렀다 다시 고향으로 가려고 했던 사람들은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뒤에 다시는 고향으로 가지 못했다. 

▲ 교동도 대룡시장 가게 앞 진열장

눈앞에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교동도에서 정착해야 했다. 살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고, 그 가운데 고향인 연백에 있던 시장을 생각하며 교동도에 시장을 만들게 됐다. 그 시장이 바로 대룡시장이다. 

▲ 교동도 대룡시장 벽화

시장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흐르며 외지에서 들어와서 장골목에 터를 잡은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시장도 쇠락했다. 그러던 중 2014년에 교동대교가 생기고 외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세월이 멈춘 대룡시장 풍경은 50 ~60대 이상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했다. 젊은이들에게는 딴 세상으로 비쳤다. 

드라마와 영화, 오락프로그램 등을 촬영했다는 소문은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대룡시장을 알렸다. 대룡시장은 그렇게 새 숨을 쉬기 시작했다. 

▲ 교동도 대룡시장 주막

낮술, 그리고 

▲ 교동도 대룡시장 특산품 강정

대룡시장에 도착해서 지인에게 전화했더니 1분 만에 나타났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시장골목으로 들어갔다. 

시장이 작아서 금세 돌아볼 수 있었지만 시장 구경은 내일로 미루고 지인이 있는 주막에 앉아 낮술을 시작했다. 

낮술이 맛있는 건 낮에 먹기 때문이라는 너스레로 첫 잔을 시작했다. 강화도 특산품 인삼막걸리를 마시는 사이 지인은 주방에서 김치찌개며 파전을 해다 날랐다. 그만 하고 같이 한 잔 하자는 말에 잠깐 앉아 소주 한 잔 마시더니 또 일어나서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 교동리 마을

그게 지인의 인사였다. 반가움의 표시였고 먼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는 위안이었다. 벌써 한 상 가득 찼지만, 나는 ‘인삼깍두기’를 달라고 했다. 인삼을 깍두기처럼 썰어 날것으로 먹는 것도 좋다고 덧붙여 말했다. 물론 농담이었다. 강화도 특산품 중 하나가 인삼이라서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지인의 손에 도라지 한 봉지가 들려있었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인삼 대신 도라지’였다. 

▲ 교동도 대룡시장

지인은 도라지를 손질해서 고추장과 함께 상에 올렸다. 꿀을 찍어먹으면 괜찮을 것 같아 꿀을 달라고 했는데 꿀이 없어서 매실청을 한 종지 가져왔다. ‘꿀 대신 매실청’이었다. 

그러는 사이 막걸리 빈 병이 서너 개 쌓였고 주종을 바꾸어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날은 저물었고 밖은 어두워졌다. 주막 앞에 있는 북으로 장단을 치기도 하고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낮이 밤이 됐으니 슬슬 밤술을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 교동리 골목

계란동동쌍화탕
우리는 천천히 밤 깊도록 술을 마셨다. 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마지막 한 잔의 술을 나누어 마시고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잠든 새벽부터 눈이 온 모양이다. 하늘은 온통 짙은 회색이었고 땅은 온통 하얀 눈이었다. 공중에는 눈송이가 가득했다.  

나는 컵라면으로 속을 다래고 지인은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열었다. 함께 온 일행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눈 내리는 교동도에서 그렇게 게으른 아침을 열었다. 일행도 일어났다. 우리는 시장골목 해장국 집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속을 풀었다. 

▲ 교동초등학교 앞 나무가 있는 집

낮이 되면서 싸래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간혹 눈이 그치기도 했지만 나는 눈이 더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실제로 그렇게 됐다. 

눈을 맞으며 시장골목을 돌아다녔다. 평일이라 문을 열지 않은 집도 있었다. 구경꾼들도 많지 않았다. 

▲ 교동도 대룡시장 다방

시장골목을 누비다가 만난 다방 문에 ‘옛날쌍화탕’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차 한 잔의 여유’라는 세련된 시간 보다 ‘계란 노른자 띄운 쌍화차’를 마시던 구성진 시간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 교동도 대룡시장 다방에서 먹은 계란동동쌍화탕

“쌍화탕 주세요” 했더니 “노른자 띄울까요?”라고 묻는다. 우리는 동시에 “네”라고 대답했다. 

탁자에 놓인 쌍화탕에는 검은색 쌍화차와 잣, 대추, 기타 등등이 들어있었고 그 가운데 계란 노른자가 동동 떠있었다. 한 눈에 봐도 ‘계란동동쌍화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쌍화차가 아니라 꼭 쌍화탕이어야 한다. 

한 모금 마시는데 걸쭉하다. 입에 들어온 잣을 씹는데 고소하다. 차 자체의 맛이 그윽하고 깊다. 잘 다려 짠 보약 한 모금 들이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쌍화탕이라고 해야 옳다. 

한 잔 다 비우고 아쉬워 더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건더기는 안 되고 쌍화차 찻물만은 한 잔 정도 더 드릴 수 있다고 했다. 그 한 잔으로 속을 완전히 풀었다. 

눈은 그치듯 내렸고 내리는 듯 그쳤다. 회색빛 하늘 아래 눅진한 공기를 호흡하며 걷는 교동리 골목길이 좋았다. 푸른 나무 한 그루가 낡은 집 앞에 서있었다. 그날 그 풍경이 마음에 남았던 건 교동도 대룡시장에 자리를 잡은 지인의 새 삶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교동초등학교 앞에 있는 집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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