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듯해지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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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7.01.1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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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시 성북구 북정마을
▲ 북정마을.

#여행 #장태동 #성북구 #북정마을 #걷기

한양도성 아래 북정마을은 조선시대에 메주를 만들던 곳이다. 메주콩을 삶을 때 ‘북적북적’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북정’이다. 메주 만드는 사람이 많아 북적댄다고 해서 ‘북정’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노인정, 사랑방, 가게 앞에 삼삼오오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오래된 마을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 북적거린다. 북정마을에는 사람이 있다.   
   

▲ 북정마을 골목길.

추억으로 가는 환승구 
북정마을에는 60~70년대 달동네 분위기가 남아있다. 그 시절 산비탈 마을 골목에서 뛰어놀던 사람들에게 북정마을은 추억으로 가는 환승구다.     

북정마을 골목길을 처음 걸었을 때 내 기억의 가장 오래된 유적, 포대기에 업혀 맡았던 엄마 등 그 향기가 났다. 

▲ 가파른 계단 골목길.
▲ 옛 굴뚝 흔적.

비닐우산 대나무로 활을 만들어 병정놀이를 하던 언덕, ‘Y’자로 갈라진 나뭇가지에 노란 애기 귀저기 고무줄을 묶어 만든 새총을 들고 뛰어 다니던 뒷동산, ‘오징어가이상’ ‘말타기’ ‘다방구’ ‘술래잡기’… 그렇게 뛰어 놀던, 어릴 때 살았던 골목길이 생각난다. 

해 지고 공기가 보랏빛으로 바뀔 때면 우리들을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골목에 쩌렁쩌렁 울렸다. 더 놀고 싶은 마음에 골이 난 마음은 집 마당 샘터에서 다 씻어졌다. 

연탄불 위 커다란 양은솥에서 설설 끓는 물을 떠서 대야에 담긴 찬물에 부어 따끈한 물을 만든다. 물에 손을 담그면 동상 걸린 손등이 간지럽고 따끔거렸다. 흙먼지 시커먼 때 구정물이 하수구로 흘러간다. 그때는 엄마 손이 왜 그렇게 억세게 느껴졌는지! 유년의 겨울은 그렇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 마을버스 내리는 곳에서 골목길로 내려가는 초입에 조화를 달아놓았다.

연나산 돼지바위
성북03 마을버스를 타고 회차지점인 노인정(북정노인정) 정류장에 내린다. 허름한 구멍가게 한쪽에 ‘북정카페’라는 이름이 붙었다. 

‘북정카페’ 앞 난로 둘레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난로 옆 간이탁자에 소주와 막걸리가 보인다. 난로 위에 피조개와 꼬막이 입을 벌리고 거품을 내면서 익어간다. 술 한 모금에 꼬막 한 점 나누어 먹는 동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동네 이야기를 들었다. 

▲ 북정카페.

북정마을은 조선시대 영조 때 메주를 만들던 동네였다고 한다. 지금 한자 이름은 ‘북정(北亭)’인데 옛날에는 ‘북정(北井)’이었다. 

▲ 북정카페 앞 난로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꼬막을 구어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북정카페’는 이름 없는 마을 구멍가게였다. 북정마을이 한양도성 성곽 아래 마을로 알음알음으로 알려지다가 월월축제(북정마을에서 여는 마을축제)로 유명세를 타면서 ‘북정카페’라는 이름을 달았다. 

‘북정카페’ 앞 노인정은 70~80대 이상 노인들의 사랑방이다. 노인정 건물 앞에 돼지(혹은 양)를 닮은 바위가 있다. 옛날에는 이곳을 ‘연나산’이라고 불렀다.(공식 지명은 아니고 마을 주민이 알고 있는 이름이다.) 그 바위 아래서 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바위 주변이 깎이고 지형이 변하면서 그 바위만 옛 모습 그대로 남았다. 

북정마을에는 3~4대를 이어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 마을에 터를 잡은 지 30년 정도 된 아저씨가 “여기서는 30년 가지고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하면서 막걸리를 한 잔 따라주신다. 그 사이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잇는다. “옛날에는 여기 동네 골목길이 좁아 물지게 지고 똑바로 걷기도 힘들었어요.” 수도가 없던 시절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물을 길어 날랐었다. 

▲ 노인정 건물 앞에 있는 돼지바위.

1983년에 지금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이 생기면서 마을사람들의 생활은 그나마 편해졌다. 하지만 도로에서 이어지는 마을 안 골목길은 예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 산비탈 마을 담벼락 넘어 도심의 건물들이 보인다.

옛 골목길
산동네 찬바람이 매서웠지만 난로 곁은 따듯했다. 골목구경 좀 하겠다며 인사하고 그 자리를 떴다. 

산비탈에 집들이 층층이다. 골목길 아래 지붕이고 집 위에 집이다. 가파른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는 아주머니에게 동네구경 왔다며 인사를 했더니 잘 돌아보고 가라신다. 

▲ 한마음 사랑방. 아주머니들이 모이는 곳이다. 조금 위에는 그 윗대 아주머니들이 모이는 방이 또 있다.

골목길이 형식 없는 미로 같이 얽혀있다. 어른 한 명 간신히 지나야 하는 곳도 있다. 회벽 갈라진 담벼락, 옛 굴뚝의 흔적, 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담장, 찌그러지고 녹슨 양철문, 물결 모양의 슬레이트지붕, 빨랫줄에서 마르고 있는 시래기, 허공을 향한 녹슨 편지함, 낯선 발소리에 컹컹 짖는 개…

▲ 빨랫줄에서 마르고 있는 시래기.
▲ 녹슨 편지함.

이곳에서는 소리가 벽을 넘나든다. 골목길을 걸을 때는 이야기도 소곤소곤, 발걸음도 조심해야 한다. 저녁 어스름 밥 익는 냄새 된장찌개 냄새가 골목에 흐른다. 금방이라도 엄마가 대문을 열고 나와 ‘밥 먹어라’고 부를 것 같다. 옛 생각과 함께 어둠이 내린다. 

▲ 마을 꼭대기 부근 골목길에 개들이 모여서 논다.

골목길을 올라가는 한 사내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산비탈 성근 불빛만 발길을 돕는다. 성곽 아래 사람이 떠난 집은 달빛조차 을씨년스럽다. 계단에 접힌 그림자 위로 바람은 생활의 편린을 쓸어내린다. 비탈에 선 나무들 그림자가 어지럽게 얽혔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려 서로서로 온몸을 엮어가고 있었다.  

▲ 마을 바로 위에 있는 한양도성 성곽.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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