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단지에서 전화를 받다-문래동 철공소 벽화골목
철공단지에서 전화를 받다-문래동 철공소 벽화골목
  • 나무신문
  • 승인 2016.12.0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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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 문래동 철강거리 골목.

#여행 #장태동 #문래동 #서울 #철공소 #문래동_골목길

철공단지 작업장
철공소와 골목, 벽화가 어우러진 문래동 골목길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큰 도로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많다.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와서 약 140m 정도 걸어가면 커다란 장도리가 보이는데 그곳부터 도로를 따라 가다가 골목길로 접어들면 된다.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문래우체국·문래예술공단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 문래동 철강거리 도로 옆에 있는 거대한 장도리.

하늘 파란 맑은 날, 눈 내리는 날, 구름 잔뜩 낀 날, 비 오는 날... 많은 철공소가 한 구역을 이룬 철강지대를 찾아가기 좋은 날을 생각해봤다. 

눈 내리는 날이 좋을 것 같아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출발했는데 눈이 비로 바뀌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비가 오히려 그 분위기에 더 잘 어울렸다. 

노들역에서 6211번 버스를 타고 문래우체국·문래예술공단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버스 진행 방향 반대로 조금 걸어가니 깡통로봇과 나사못으로 만든 조형물이 보인다.

▲ 문래동 철강거리 입구에 있는 조형물.

조형물들이 철의 거리, 철강지대를 상징하기에 부족했으나 그곳에 자리잡은 예술인들의 흔적까지 아우르기에는 이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원래 철공단지다. 거기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철공단지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게 하나 둘이 아니었다. 벽에 그림이 생기고 식당이나 카페가 하나 둘 씩 생기면서 일반인들이 골목마다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자체가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안전제일’의 작업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장을 오가는 사람들이 기웃거리니 안전한 작업 환경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은 더 불편한 일이다. 자신도 모르게 사진을 찍히는 것도 불쾌하지만 사진을 찍히는 것을 알았다면 그것 또한 작업에 지장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 문래동 철강거리 셔터문에 그려진 그림.

그런 일이 얼마나 많았으면 문래동 철공단지 골목 곳곳에 초상권을 지켜달라는 내용과 촬영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문구가 보인다. 

그래서 문래동 철공단지는 작업을 하지 않거나 작업하는 작업장이 드문 주말에 찾아가는 게 좋다. 철공단지 작업장 셔터문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셔터문이 내려져 있는 주말에 가야 더 많은 그림을 볼 수 있기도 하다. 

▲ 문래동 철강거리 작업장.

강철과 벽화
철공단지로 들어가는 초입에 깡통로봇과 나사못으로 만든 조형물이 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나사못 대가리마다 빗물이 맺혔다. 깡통로봇이 비에 젖어 반짝거린다.  

토요일 오후 대부분 철공소는 문을 닫았지만 작업을 하는 작업장도 있다. 용접 불꽃이 번개처럼 번뜩이고 쇠를 자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축축한 공기를 찢는다. 

▲ 문래동 철강거리 벽화.

철공단지가 아름다운 것은 벽화나 조형물 때문이 아니다. 그 무엇이 되어 사람 사는 세상에서 무슨 소용으로 쓰일 것을 기다리는 철강재료들이 쌓여 있는 모습이 좋다. 쇠를 자르는 절단기 소리, 잘려나가는 쇠에서 튀는 불꽃, 용접봉 불빛, 기름 때 쇳녹 절은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곳은 아름답다. 

▲ 문래동 철강 거리.

블록 담벼락 아래 놓인 장화에 빗물이 고인다. 장화가 기댄 담벼락에 칠 벗겨진 장미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강철의 지대에서 예술은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일까? 예술이 진입한 강철의 지대, 공존할 수 있을까?    

철공소 담벼락, 셔터문 등에 그려진 벽화가 작업장 건물과 낯설게 어울린다. 낡은 건물 현관 앞에 ‘쇠물고기’가 매달렸다. 비 내리는 공중에서 자맥질을 하는 듯 보였다. 

▲ 문래동 철강거리에 걸려 있는 쇠로 만든 물고기.

비가 잦아들었지만 비구름은 물러나지 않았다. 작업을 하던 철공소도 문을 닫는다. 간혹 오가는 청춘들 말고는 이 거리에 사람은 이제 없다.

철공단지 입구 가게에도 손님이 없다. 가게에서 진한 캔커피 한 잔 마신다. 비가 그칠 듯 내린다. 우산을 접지 못하고 걷다가 커다란 장도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 문래동 철강거리 골목 벽화.

골목으로  
철공소가 모여 있는 큰 거리를 다 돌아보고 좁은 골목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철공단지를 걷던 청춘들도 골목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골목에 있는 찻집, 술집, 식당으로 들어간다.  

골목을 따라 걷는다. 이정표도 없고 목표한 곳도 없으니 사방으로 뚫리고 사방에서 모여드는 골목길을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걸을 뿐이다. 

작은 나뭇가지에 빗방울이 열매처럼 맺혔다. 빗방울에 반영된 세상이 빗방울 수대로 거꾸로 매달렸다. 주변에 있는 벽화는 의도한 손길이지만, 가지마다 빗방울이 이렇게 반짝이는 건 생각지 못한 손길일 것이다. 

▲ 문래동 철강거리 나뭇가지에 빗방울이 달렸다.

한복을 입은 배우의 모습이 찍힌 포스터에 ‘서울 신 아리랑’이라고 적혔다. 저들은 서울을 또 어떻게 재단하고 꾸몄을까? 그들이 기획하고 만들어 낸 ‘서울 신 아리랑’을 보면서 그들이 생각지 못한 반짝이는 빗방울을 보았던 이는 있었을까? 

▲ 문래동 철강거리 골목.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포스터 여자의 눈길을 끝까지 붙잡고 골목으로 들어간다. 허물어진 담벼락이 있는 골목은 둘이 걷기에 좋다고 생각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번에는 전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나의 시간으로 들어와 나의 일상을 깨버리고 그의 세상으로 나를 안내할 그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의 세상에서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볼 수도 없는 그 무엇으로 있을 것 같았다. 

▲ 문래동 철강거리 골목. 벽에 그린 나무 그림에서 연통이 하늘로 솟고 그 앞에는 실제 나무가 자랐다.

전화벨이 울렸다. 이 전화를 받으면 나는 이제 그에게 있는 나를 만나러 가게 된다. 서울 어디쯤에서 만나겠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곳의 시공간은 만남과 동시에 뒤틀려버릴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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