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성 천년 여행길
홍주성 천년 여행길
  • 나무신문
  • 승인 2016.08.3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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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남 홍성
▲ 홍성역에서 본 들판.

#여행 #장태동 #충남 #홍성 #홍주의병기념탑 #병오항일의병기념비

홍성은 고려시대인 1018년 ‘홍주’라는 이름을 얻고 3개 군과 11개 현을 거느리게 된다. 현재 충청남도 도청이 홍성에 있으니 홍성의 역사 앞에 ‘1000년’을 붙일 만하겠다. 그래서 홍성에서 만든 길이 ‘홍주성 천년 여행길’이다. 8㎞의 ‘홍주성 천년 여행길’을 걸으며 홍성의 과거와 현재를 본다. 걷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홍성역 - 고암근린공원 - 김좌진장군오거리 - 홍성전통시장 - 대교리미륵불 - 홍주의사총 - 매봉재 - 홍주향교 - 홍주읍성 성곽 옆길 - 홍주성 홍화문 - 홍주성 역사관 - 홍성군청(홍주아문, 느티나무, 안회당, 여하정) - 조양문 - 명동거리 - 당간지주 - 뿅뿅다리 - 홍성전통시장 - 홍성버스터미널 - 홍성역 

기차 타고 홍성역
‘홍주성 천년 여행길’의 출발지점이 홍성역이다. 기차를 타고 홍성역에서 내린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역사로 들어가고 기차는 멀리 떠난다.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 잠시 머문다. 플랫폼 밖은 논이다. 논 밖은 낮은 산이다. 그런 풍경을 그냥 바라본다. 

플랫폼은 그 자체로 서정이며 서사다. 기차를 타고 어디로 가거나 어디에서 오는 시간과 그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 플랫폼은 시간이 멈춘 진공의 섬이다. 플랫폼이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모든 이별과 만남의 이야기가 멈춘 시간에 응축됐다. 

플랫폼을 벗어났다. 역사를 통과해서 역 앞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에 있는 조형물을 보니 걸어야 할 ‘홍주성 천년 여행길’이 현실로 다가온다. 

▲ 김좌진 장군 상.

역 앞 광장 조형물에 최영, 성삼문, 한용운, 김좌진 등 홍성 출신 역사 인물을 담았다. 홍성에서 느끼는 역사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홍주성 천년 여행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따른다. 고암근린공원에서 걸음을 멈춘다. 1000년 역사를 상징하는 1000개의 그림타일이 공원을 장식했다. 홍성군민 1000명이 그린 그림이다. 

▲ 고암근린공원 바닥에 1000개의 그림타일이 있다. 홍성 1000년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홍성군민 1000명이 그린 그림이다.

김좌진 장군 상이 있는 교차로 한쪽에 홍성전통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시장으로 들어서면 100년 넘은 대장간이 여행자를 반긴다. 대장간 주인아저씨가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았다. 의자도 오래돼 보인다. 대장간 가운데 놓인 모루가 반질반질하다. 사진을 찍는 사이에도 아저씨는 눈을 뜨지 않는다. 조는 게 아니라 아예 ‘오전잠’을 즐기시나 보다. 

▲ 홍성시장에 있는 100년 넘은 대장간.
▲ 홍성시장 100년 넘은 대장간 모루.

시장을 구경하다 우연하게 꽃상여 만드는 집을 찾았다. 어릴 적 고향 신작로에 꽃상여 행렬이 나가는 것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온통 흑백이던 시절 내가 본 가장 화려한 장면이었다. 

▲ 홍성시장 70년 된 국밥집.

식후경
꽃상여집 주변에 소머리국밥집이 여럿 있다. 간판을 보니 ‘대를 이어...’ ‘70년...’ 등의 수식어가 붙은 집이 몇 집 있다. 그중 ‘70년...’ 집으로 들어섰다. 할머니가 반길 줄 알았는데 아줌마다. 70년 맞냐고 물으니 호호아줌마 같은 아줌마가 환하게 웃으며 그런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듯 “그렇쥬 뭐”라며 느긋하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충청도 출신도 웬만하면 그 진의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충청도식 대답이다.    

빨간 국물의 소머리국밥이 나왔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다보니 펄펄 끓던 국물이 좀 식었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아줌마가 슬쩍 다가와 뚝배기를 집더니 “끓여드릴께”라신다. 이것도 충청도식이다.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국물과 완전히 충청도식 아줌마가 국밥의 맛에 신뢰를 보탠다. 다시 시장거리로 나선다. 

이정표는 고려시대 불상인 대교리석불입상이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끈다. 그 미륵불 앞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14일에 미륵제를 지낸다. 

▲ 홍주의사총.

홍주의사총에 도착한다. 1906년 5월20일 홍주성을 점령한 의병들은 일본군의 반격으로 홍주성을 빼앗기고 만다. 홍주성전투에서 죽은 의병의 유해를 모아 봉안한 곳이 홍주의사총이다. 당시 죽은 의병이 80명~수백명으로 전해진다. 

▲ 홍주의병기념탑.

홍주의사총 뒤에 홍주의병기념탑이 있다. 깃발을 들고 총과 칼로 무장한 의병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홍주성 지나 다시 홍성시장 
홍주의병기념탑을 지나면 바람이 지나는 넓은 언덕길이 나온다. 풋풋한 길을 따라 들꽃사랑방에 도착한다. 구절초꽃차 한 잔 마시고 잠시 쉰다. 구절초꽃 피는 가을에 또 오라는 아저씨의 말을 뒤로하고 매봉재로 향한다.

▲ 들꽃사랑방.
▲ 들꽃사랑방에서 매봉재로 가는 길.

매봉재를 지나면 홍주향교가 나온다. 향교 아래 마을로 내려선다. 벽화가 있는 골목도 있고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골목도 있다. 벽화 보다 풀이 자란 골목이 정겹다. 벽화와 무성한 풀이 다 있는 골목도 있다. 방치된 것 같은 골목에 무성하게 자란 풀과 낡은 벽화는 어울리지 않는다. 뭔가 불편한 듯 보이는데 계속 바라보게 된다. 

▲ 매봉재를 넘으면 향교가 나온다. 향교 아래 마을 골목.

홍주읍성 성곽을 따라 걷다가 홍화문으로 들어간다. 홍주성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성 안에는 비석군, 병오항일의병기념비, 홍주성토성유적, 옥사, 우물, 홍주역사관 등이 있다. 

병오항일의병기념비 건립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다. 1906년에 의병이 홍주성을 점령했을 때 의병을 공격하던 일본군이 죽자 이를 애도하기 위해 1907년에 김윤식이 글을 짓고 이완용이 글씨를 써서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해방을 맞아 그 비석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병오항일의병기념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 홍주읍성.
▲ 홍주읍성 성곽에 올라가 본 홍성시내.

홍주성역사관에서 홍성의 역사를 배운다. 홍주성 관아의 외삼문인 홍주아문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고려시대 말에 심었다고 전하는 느티나무다. 

나무 뒤에 홍성군청 건물이 있고 그 건물 뒤에 홍주성 수령 집무처였던 안회당이 있다. 안회당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마신다.  

▲ 안회당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풍경을 즐긴다.

오래된 한옥 마루는 시원하다. 창 밖 멀리 멋들어지게 굽은 나무와 정자가 어울린 풍경을 바라본다. 시간이 흐른다.   

안회당의 시간을 마음에 두고 다시 걷는다. 홍주성 동문인 조양문 앞을 거쳐 명동골목을 지나 보물 제538호 오관리 당간지주에 도착한다. 

▲ 오관리 당간지주에서 홍성시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뿅뿅다리.

홍성천에 놓인 뿅뿅다리를 건너 홍성전통시장에 도착했다. ‘홍주성 천년 여행길’은 홍성터미널을 지나 홍성역에서 끝나지만 사실상 홍성전통시장이 종착지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때마침 이날이 홍성맘프리마켓이 열리는 날이었다. 홍성의 엄마들이 먹을거리, 공산품, 중고장난감, 손수 만든 제품 등을 들고 나오는 날이다. 추억의 못난이 인형을 두고 ‘홍성맘’과 옛 이야기를 나눈다.

▲ 홍성전통시장 앞 홍성천변에서 열리는 홍성맘 프리마켓. 추억의 못난이인형.

홍성전통시장 식당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막걸리다. 팬티까지 젖었는데 기분은 상쾌하다. 돌아가는 길, 밤기차가 나를 기다린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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