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금강
나의 해금강
  • 나무신문
  • 승인 2016.08.1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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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경남 거제
▲ 해질 무렵 풍경이 좋은 곳.

#여행 #장태동 #경남 #거제

이름 없는 전망대에서 해지는 바다를 보다
해질녘 구조라해변의 파도가 높다. 남자 몇몇이 파도를 두고 떠나지 못한다. 밥 짓는 냄새가 백사장에 퍼진다. 아이들은 텐트로 돌아간다. 해변의 저녁도 일상과 다를 게 없다. 

머물러서 할 것 없는 사람들은 또 어디론가 떠난다. 낙조를 보기로 했다. 서쪽으로 달렸다. 다대리를 지나 남부면 방향으로 차를 달린다.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아가는 전망 좋은 곳이다.  

저구사거리에서 동부면 방향으로 접어든다. 오르막길을 조금만 오르면 길 왼쪽에 전망 좋은 곳이 있다. 섬들이 바다에 떠 있다. 

빛은 있는데 해가 없다. 일몰 시간이 아직 십여 분 남았으니 해가 바다 위에 떠 있어야 한다. 수평선에 장막을 친 구름이 해를 가렸다. 해가 지는 방향의 수평선 주변이 울긋불긋하다. 

파란 하늘이 아직 남아 있다. 바람은 구름의 모습으로 하늘을 지난다. 바람 부는 하늘에 낮달이 보인다. 해와 달이 한 하늘에 떠 있다. 
 
해금강의 밤과 아침
일몰시간을 넘기고 그 자리를 떠난 것은 혹시라도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낼까 기대했기 때문은 아니다. 

청춘이 빛나던 시절 색을 찾아다닌다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능선에서 빛나는 신록의 색, 잉걸의 색이 자신이 찾던 색이라고 했다. 

해 지는 바다 앞에서 그 친구가 생각났던 것이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어둠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돌아섰다.

해금강에 도착했다. 사람들 돌아간 여행지만큼 휑한 것도 없다. 몇몇 식당이 문을 열었다.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 옆에 작은 글씨로 ‘2인분부터 주문 가능’이라고 써놨다. 

맥주 한 병으로 몸에 쌓인 열기를 풀면서 혼자 먹을 음식 좀 해달라니까 해물된장찌개를 해주겠단다. 

해물된장찌개를 간이가스렌지에 올려 끓여준다. 소주를 시켰다. 손님은 나 혼자였고 주인과 종업원들이 내 옆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 그들과 비슷하게 밥상을 물리고 나왔다. 숙소는 밥집 바로 옆으로 정했다. 

해금강 마을의 밤 골목 풍경은 작은 항구 앞에서 끝난다. 항구 옆 불빛 닿지 않는 곳은 빛을 빨아들이는 현지(玄地)다. 내 시선을 빨아들이고 나서는 소리마저 삼키려는 지 내 청각 신경을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자꾸만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어둠을 뒤로 하고 골목으로 돌아왔다. 언제 사람들이 왔는지 골목의 한 식당이 시끌벅적하다. 숙소 앞 가게에서 소주를 사서 평상에 앉았다. 동네 개와 고양이가 번갈아 가며 내 옆에 머문다. 

▲ 해 뜨기 전에 우제봉에 올랐다. 해가 구름에 가려 일출은 못 보았고, 다도해 섬 사이로 분주하게 질주하는 고깃배들이 여는는 아침을 보았다.

해금강의 아침은 우제봉에서 맞아야 한다는 가게 주인의 말을 믿기로 하고 해 뜨기 전에 산을 올랐다. 높지 않지만 새벽 산길에 숨이 차다. 정상에 올랐지만 일출은 보지 못했고 다도해 섬 사이로 분주하게 질주하는 고깃배들이 여는 아침을 보았다. 
 
신선대
아침을 먹고 걷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려 했지만 차가 드물었다. 해금강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십자동굴을 볼까 생각했는데 우제봉에서 본 ‘고깃배들의 질주’로도 해금강은 내게 충분했다. 

해금강은 육지의 끝이니 길도 거기서 끝난다. 반도처럼 바다로 돌출된 해금강의 ‘목’부분에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이 양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까지 걸었다.

▲ 해금강에서 나오다 보면 신선대 전망대가 있다. 사진은 신선대전망대에서 본 풍경. 왼쪽 바다가 신선대 바다이고 오른쪽 바다에 학동몽돌해안이 있다.

바위는 겹겹이 쌓인 층으로 되어 있다. 그 층이 단절되고 뒤틀리고 융기된 모습이다. 서로 다른 지구의 시간대가 현재에 드러나 함께 하고 있다. 신선대전망대에서 신선대의 일부가 보였다. 조금 더 걸으니 신선대로 내려가는 길이 나왔다. 신선들이 놀던 곳이라는데 바닷가 절벽 바위가 넓다.   

▲ 신선대.

신선대 옆 바닷가는 몽돌해변이다. 작은 해변이지만 파도가 드나들 때 마다 빈 공간에서 소리가 공명한다. 몽돌해변 끝까지 걸어갔다가 되돌아온다. 

▲ 신선대 옆 작은 몽돌해변에서 본 신선대.

신선대 바위절벽으로 올라가는데 바위 틈에 노랗고 작은 꽃들이 옹송거리고 피어났다. 꽃을 바라보는 시간 동안 몽돌해변의 공명이 배경음악이 된다.  

▲ 신선대 바위 틈에 피어난 작은 꽃들.

바람의 언덕
신선대에서 올라와 차도를 건너 반대편 바다 쪽으로 걷는다. 멀리 바닷가 언덕에 풍차가 보인다. 그곳이 바람의 언덕이다.  

▲ 바람의 언덕에 있는 풍차.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 초입에 동네 할머니 몇몇이 파라솔 그늘에 앉아 무엇인가 팔고 있다. 그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은 길지 않다. 바닷가 산기슭 마을 위로 난 길을 따른다. 바람의 언덕에 서면 거제의 유명한 여행지인 외도와 학동몽돌해변이 멀리 보인다. 그뿐이다.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풍차 앞에서 사람들은 바람의 언덕에 바람 한 점 없다는 말을 약속 한 듯 내뱉는다. 바람 한 줄기 불어 더위를 식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람의 언덕에서 돌아선다. 

▲ 바람의 언덕이 있는 마을.

돌아나가는 길에 도장포유람선선착장과 산기슭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본다. 전망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들어섰고 돈을 내고 차 한 잔이라도 마셔야 좋은 자리에 앉아 그럴싸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파라솔 아래 앉아 있던 아줌마들은 거북손, 보말, 소라를 삶아 와서 파는 거였다. 아주머니 한 분이 맛 좀 보라며 보말을 하나 집어 든다. 이쑤시개로 보말 살을 뺀다. 나는 그 손을 사진에 담는다. 보말 다음엔 거북손이다. “이렇게 요기를 잡고 요로케 톡 하고 당기면 되요”라며 내 카메라 앞에서 시연을 해 보인다. 그 손도 사진에 담았다. 

▲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 초입에 있는 해산물 파는 아줌마가 한 분이 맛 좀 보라며 보말을 하나 집어 든다.
▲ 거북손.

그러는 사이 사람들이 파라솔 주변으로 모여든다. 나는 5000원 어치 담아달라고 하고 돌아선다. 조금 가다가 아줌마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뒤를 돌아봤다. 외지에서 온 이상한 차림의 남자가 땡볕에 혼자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아줌마들은 웃고 있었다. 신선대 절벽에 핀 꽃도 저렇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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