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에 묻힌 사람들
망우리에 묻힌 사람들
  • 나무신문
  • 승인 2016.06.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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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
▲ ‘망우산 사색의 길’을 걷다보면 전망이 트이는 곳을 만난다.

#여행 #망우리공원 #서울 #방정환 #둘레길 #한용운 #조봉암 #박인환 #지석영

옛날 망우리공동묘지가 망우리공원이 됐다. 동네 사람들은 공동묘지가 있는 공원에서 산책을 한다.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공동묘지가 여행지다. 오래된 침묵이 봉분과 함께 있는 그곳에 한용운도 묻혔고 박인환도 묻혔다. 망우리공원으로 여행을 떠난다. 

▲ ‘망우산 사색의 길’.

공동묘지에서 공원으로
망우리공동묘지는 1933년 5월에 조성됐다. 공동묘지가 있는 산 이름이 망우산이다. 망우산에 약 83만㎡(약 25만 평) 정도 넓이로 공동묘지를 조성했다. 1973년에 묘역이 다 찼다. 그 이후 이장과 납골 등으로 인해 묘가 점차 줄어들었다. 

한용운, 방정환, 박인환, 조봉암, 지석영 등 정치인과 독립운동가 시인 미술가 등 유명인사의 묘가 있다. 산책을 즐기면서 유명인사들의 묘를 돌아볼 수 있는 길에 ‘사색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동묘지가 공원이 됐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 ‘망우산 사색의 길’을 걷다보면 풍경이 걷고 싶은 마음을 생기게 하는 곳을 만난다.

망우리공원으로 가는 길 중 용마문화복지센터 버스정류장에서 시작되는 길을 선택했다. 용마문화복지센터 정류장에는 271번, 1213번, 2013번, 2230번 시내버스가 정차한다. 

버스에서 내려서 중화중교삼거리 부근에 있는 버스차고지 옆 좁은 도로(용마산로 84길)로 올라간다. 면목고등학교 옹벽 앞에서 길은 왼쪽으로 꺾인다. 그 길을 따르다보면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숲으로 향한다. 

▲ 숲에 있는 돌탑군락지.

사색의 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
숲길을 걷는다. 요즘 만들어지는 공동묘지처럼 일정한 장소에 일정한 간격으로 묘가 자리잡은 게 아니고 산 이곳저곳에 묘가 있어서 여느 산길을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숲길을 어느 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정자를 바라봤을 때 왼쪽으로 난 넓은 길로 간다. 

소나무숲에 있는 돌탑군락지를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면 포장도로를 만난다. 포장도로를 만나면 우회전 한다.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좌회전해서 걷는다.(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에 적힌 ‘망우산 사색의 길’ 방향으로 걷는다.)

▲ 숲길을 걷다가 사진에 나오는 정자가 나오면 사진에 나오는 길로 가면 된다.

‘망우산 사색의 길’은 도로를 따라 걷지만 길 옆 숲이 좋아 걸을 만하다. 그리고 그 길에서 정치가 조봉암, 의사이자 국어학자인 지석영, 스님과 시인으로 살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만해 한용운, 어린이를 위해 산 소파 방정환, 시인 박인환 등 유명인사의 묘 앞에 서 본다. 

▲ 조봉암 묘.

조봉암은 일제강점기에 공산당 활동을 하면서 항일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했고 국회부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진보당을 창당하고 위원장이 됐다.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로 사형 됐으나 2011년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어 신원이 복권됐다.

▲ 한용운 묘.

‘조선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이다. 그런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히 산단 말인가’ 라며 성북동 골짜기 심우장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만해 한용운의 묘 앞에 선다. 그가 남긴 유명한 시 ‘님의 침묵’을 떠올린다. 

방정환의 묘비에는 ‘童心如仙(동심여선)’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어린이 마음은 천사와 같다는 뜻이다.  

어린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 어린이가 읽을 동화를 지은 사람, 일제강점기 민족의 미래는 어린이에게 있다며 어린이를 위해 살다 간 사람이 방정환이다. 

▲ 방정환 묘.
▲ 방정환 묘 입구에 있는 비석.

‘삼십년 사십년 뒤진 옛 사람이 삼십년 사십년 앞 사람을 잡아끌지 말자.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을 위하고 떠받쳐서만 그들의 뒤를 따라서만 밝은 데로 나아갈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다.’ 1930년 방정환이 남긴 글이다. 

천연두를 예방하는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묘는 묘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주변에 다른 묘도 있어 찾기 어렵다. 지석영 묘를 찾다가 우연히 올라간 언덕에서 전망 좋은 곳을 만났다. 북한산과 도봉산이 멀리 보인다. 

▲ 지석영 묘에서 조금 올라가면 전망이 트이는 곳이 나온다. 북한산과 도봉산이 보인다.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이 묻힌 곳

▲ ‘망우산 사색의 길’에 있는 박인환 시인 묘 이정표.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전망이 트이는 곳이 나온다. 구불거리는 도로가 숲과 어울린 풍경 중에서도 유달리 사람의 마음을 끄는 곳이 있다. 

그런 길을 걷다보면 망우리공원 관리소가 보인다. 관리소가 있는 정문 쪽으로 가지 말고 ‘망우산 사색의 길’을 따라 조금 더 걷다보면 시인 박인환의 묘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를 따라간다.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 유명한 시를 남긴 시인의 무덤 앞에 선다. 시야가 트여 전망이 펼쳐진 그곳 하늘에 구름이 낮게 드리운다.  

▲ 박인환 묘에서 본 풍경.

무덤 위에 작은 꽃이 몇 송이 피었다. 노래로 만들어진 그의 시 <목마와 숙녀>를 떠올리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가사가 생각나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 대로, 생각나는 구절들은 생각나는 대로 작은 소리로 노래를 하다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 가사를 애써 떠올리려 하지 않고 멈춘다. 바람이 분다. 무덤 위 작은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 ‘망우산 사색의 길’은 포장된 길이지만 숲이 있어 걷기 좋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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