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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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6.04.26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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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 북한산 김수영 시비에서 도봉사까지
▲ 목련꽃 사이로 보이는 도봉산.

#도봉산 #여행 #송시열 #김수영 #목련 #진달래

계곡에 울리던 글 읽는 소리
지하철 1·7호선 도봉산역에서 내려서 북한산국립공원 쪽으로 향한다. 건널목을 건너 음식점이 즐비한 골목을 걷는다. 식당 지붕 위에 벚꽃이 피었다. 활짝 핀 꽃 같은 얼굴들이 산으로 향한다. 

▲ 송시열의 글씨

목련꽃을 달고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도봉산이 보인다. 산 아래라서 그런지 서울 도심과 공기가 다르다. 

상가를 지나면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지구 입구가 나온다. 보도블록이 깔린 길을 따라간다. 큰 바위에 ‘도봉동문’이라는 한자가 새겨졌다. 조선시대 사람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도봉산자락에 있던 도봉서원의 입구이자 도봉산의 입구를 알리던 표지석 역할을 하던 것이다. 

거대한 목련나무가 꽃을 피웠다. 그 옆에 광륜사가 있다. 광륜사는 신라시대인 673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당시에는 만장사라고 불렀다. 천축사, 영국사와 함께 도봉산의 주요 사찰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조선 후기에 중창했다.  

▲ 도봉사에서 바라본 도봉산.

쌍줄기약수터를 지나면 길 오른쪽에 도봉서원 터가 있다. 도봉서원은 조선시대 선조6년(1573년)에 조광조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송시열, 권상하, 이재 등이 이곳에서 유학을 가르쳤다. 산세 좋고 골 깊은 계곡에 글을 읽던 유생들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흘렀을 것이다. 

도봉서원 터 둘레에 철책으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 울타리 앞 길가에 작은 비석이 하나 서있다. 시인 김수영의 시비다. 

▲ 김수영 시비.

시인을 만나다
김수영 시인은 1921년 태어났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청년이다.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생활을 하다가 학병 징집을 피해서 만주로 이주해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광복을 맞아 서울에 온 김수영은 그해에 <묘정의 노래>를 [예술부락]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6.25 한국전쟁 때에는 의용군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탈출 했지만 붙잡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포로생활 등 역사의 격랑을 살아낸 그 앞에 4.19혁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민의 이름으로 이루어낸 대한민국 민주주의 혁명, 그 역사 앞에서 김수영 시인은 시를 남긴다. 

4.19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960년 4월3일에 <하... 그림자가 없다>라는 시를 쓴다.   

[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하늘에는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시인의 시 <하... 그림자가 없다> 중 일부-

그리고 시인은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4월26일 또 하나의 시를 쓴다. 

[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기념탑을 세우자/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 - 김수영 시인의 시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중 일부-

도봉서원 터 앞 길가에 있는 시비에는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작품이자 교과서도 실린 유명한 시 <풀>의 2연을 새겼다.  

[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시비 주변에 키 작은 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 도봉사.

수양벚꽃 낭창거리는 도봉사
김수영 시인의 시비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서원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간다. 

조금 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온다. 자운봉, 우이암, 도봉탐방지원센터 방향 중에 도봉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가다보면 도봉사가 나온다. 

도봉사는 해거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고려 4대 임금 광종은 해거스님을 국사로 임명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151호로 지정된 석가여래철불좌상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옮겨 전시중이란다. 

▲ 북한산 계곡과 진달래.

작은 절에 꽃이 화사하다. 낭창거리는 수양벚꽃이 햇볕에 반짝인다. 꽃 아래 엎드려 조는 개 옆에 앉아 수양벚꽃을 바라본다. 

꽃잎마다 부서지는 4월의 햇살이 눈부시다. 시인 김수영에게 4.19혁명은 아마도 저렇게 빛났으리라. 거리에 나선 사람들 하나하나가 시인 김수영에게는 빛나는 꽃잎처럼 보였을 것이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