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이판, 바다와 함께 한 첫날
여행/사이판, 바다와 함께 한 첫날
  • 장태동
  • 승인 2007.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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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이어지는 백사장을 따라 육지 속으로 들어간다. 하얀 모래밭 끝에 거대한 뿌리를 드러낸 이국의 이름 모를 나무 한그루, 마을 어귀를 지키는 우리나라의 동구나무처럼 그 나무 또한 사이판 어느 시골 차모로족 원주민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바다를 향해 서 있다.

나무그늘 아래 앉은 차모로족 처녀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 바다로 광기의 제국 세력이 들어왔다. 미국이 내세우는 제국의 야망은 태평양 바다에 묻혀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이곳까지 미쳐 자치령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본이 만든 인공 휴야지 사이판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땅의 원래 주인인 차모로족 처녀들은 아무런 이야기 없이 자본의 제국이 만들어 놓은 일류 호텔 밖 바닷가 나무뿌리 위에 앉아 저 먼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에게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자 엷은 미소만 그린다. 어떤 아가씨는 고개를 돌리고, 어떤 처녀는 자리를 뜬다. 그럴수록 나는 더 그들의 바다, 그들의 하늘, 그들의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바다와 나란히 닿아있는 해안선은 노을이 피는 해질 녘에 걸어야 한다. 수직으로 솟아 오른 구름 떼 사이로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빛과 색들이 쏟아져 내린다. 그 빛 그 색을 빨아들인 구름들은 또 다른 프리즘으로 세상을 비춘다. 이 모든 것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 머리 위로 덮칠 것 같다. 자연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절정의 빛이 노을임을 여기서 깨닫는다.

북마리아나제도에서 국제공항이 있는 곳은 사이판뿐이다. 다른 섬들보다 먼저 개발 됐고, 편의 시설도 많다. 특급호텔들도 여러 개 있고 식당거리와 쇼핑거리 등도 있다. 로타와 티니안에 비교하자면 사이판은 나이든 노인의 섬이라고 할까?

사이판 해안들은 곱다. 호텔의 야외식당과 연결된 해안들은 특히 더 얌전하다. 호텔 산책로와 이어지는 바다에서는 호텔에 소속된 강사들이 무료로 해양레포츠를 가르쳐 준다. 나무 그늘에 매달아 놓은 해먹에 누워서 가장 편안한 한 때를 즐긴다. 태양 빛을 가르며 열심히 해안을 달리는 젊은이들도 있는가 하면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은 바다와 모래사장을 번갈아 드나들며 행복을 만들고 있다.

해질 녘이면 호텔야외식당에 마련된 공연장에서 남국의 민속춤과 노래가 공연되고 만찬과 곁들인 와인에 흥이 나면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다. 신비하고 영롱한 노을빛에 가슴이 벅찰 때면 어느덧 공연은 무르익고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 하나씩 간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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