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 야구의 몽상
문화칼럼 - 야구의 몽상
  • 김도언
  • 승인 2007.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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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중에서 문학적 주제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종목을 꼽으라면 야구를 꼽을 수 있다.

1988년 제1회 미시마 유키오 문학상 수상작으로 유명한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는 야구가 가지고 있는 예술성을 놀라울 정도의 세심한 감각으로 이끌어낸 수작이다. 한국 소설의 경우에도 박민규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작품으로 200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야구에 대한 문학적 환기를 보여주었다.

사실 야구는 경이로운 스포츠다. 그것은 야구가 운동역학과 물리학, 그리고 통계학이 적용된 고도로 진화한 스포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꼽는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은 다름아닌 한가함에 있다. 야구는 그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한가로운 스포츠인 것이다. 병살타성 타구를 날린 타자나 도루를 노리는 주자, 그리고 주자가 3루에 있는 상황에서 투수가 던진 볼을 뒤로 빠뜨린 어떤 가엾은 포수를 제외한다면, 야구 선수가 급해야 할 경우는 거의 없다. 타자가 덕아웃에서 아몬드 껍질을 까며 자신의 타순을 기다리는 경우에도 그는 여전히 경기에 ‘참가중’이다. 뛰어난 에이스가 삼진 쇼를 펼치면 야수들은 아무런 할 일이 없다. 어떤 외야수는 경기 내내 한 번도 볼을 캐치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 그는 출전수당을 챙긴다. 덕아웃에 있는 선수들은 음료수도 돌려 마시고 얼음찜질 같은 걸 하면서 논다.

야구는 이처럼 한가함을 즐기는 것이 가능한 스포츠다. 그 어떤 스포츠의 벤치도 야구장의 덕아웃만큼 한가하지 않다. 배구 코트나 농구 코트의 벤치에서는 경기에 뛰는 선수들에게서보다도 더욱 긴장감이 느껴진다. 축구장의 벤치도 마찬가지인데, 거기는 분위기가 살벌하기까지 하다. 말을 건네면 한 대 얻어맞을 것만 같다. 야구는 한가한 유희의 스포츠다. 한가함은 공상과 몽상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해, 야구가 주는 유희의 내용은 바로 공상과 몽상이다. 공상과 몽상은 모든 예술의 질료이다.

문학은 특히 공상과 몽상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문학은 공상을 통해, 새로운 현실의 질서를 꿈꾼다. 공상과 몽상이 가능한 야구가 문학적 주제로 각광받는 현상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과 연관지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