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에 대한 신뢰로 짓다,
건축가에 대한 신뢰로 짓다,
  • 홍예지 기자
  • 승인 2015.09.2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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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재(餘韻齎)
▲ 외관.

[나무신문] 50대의 건축주 부부는 자녀가 모두 성장하자 단독주택을 꿈꿨다. 설계가 끝난 후 연구년에 맞춰 스페인으로 떠난 부부는 건축가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했다. ‘그러함을 담은 집’이라는 뜻의 ‘여운재(餘韻齋)’는 건축주 부부와 건축가가 합작해 이뤄낸 주택으로, 알차게 꾸민 공간 하나하나가 정감 있는 곳이다.     <편집자 주> 

391호부터 3번에 걸쳐 (주)노바건축사사무소의 듀플렉스 주택 프로젝트가 차례로 소개됩니다. 그 마지막 이야기. 

 

▲ 외관.

단독주택에서 시작하는 인생 제2막  
교직에 몸담고 있는 건축주 부부는 어린 시절 거주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단독주택을 꿈꿨다. 장성한 두 아들이 부모 품을 떠나자, 부부는 아파트를 고집하는 대신 직장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의 부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은 부지 선정부터 계획, 설계, 시공 등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 완성해야 했기에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부부는 원래 단독주택 부지로 양평을 생각했으나, 팔을 걷어붙이고 말린 사람은 ㈜노바건축사사무소의 강승희 소장이었다.

“건축주에게 가장 먼저 말씀드린 것은 ‘낭만과 현실에 대한 구분’이었습니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상태에서 두 분 다 먼 거리 주택에 거주할 경우에는 세컨드하우스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택지가 조성된 부지 중, 경기도 하남시의 땅을 찾아보시라 추천했습니다.”

하남시 부지는 우연하게도 ‘2012 경기도 건축문화상 특별상’을 받은 ‘여현재(餘賢齋)’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강 소장이 설계한 집이었기에 부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여현재의 건축주 역시 교직에 몸담고 있어 쉽게 공통부분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점도 한몫했다.

 

▲ <남측 입면도>

임대료로 충당하는 시공비
주택의 형식은 다가구주택인 ‘듀플렉스’로 계획했다. 잘 설계된 듀플렉스 주택은 일반 주택의 전세보다 비쌈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수요가 있었기에 총 공사비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듀플렉스 주택은 임대를 통한 수익이 발생하기에 한정된 비용으로 적정 규모의 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설계가 잘 된 집일수록 임대 수요가 쉽고, 단독으로 사는 것보다 이웃이 생겨 자연히 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명의나 재산권도 단독으로 소유할 수 있어 재산권 문제로 인한 불편함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 마당.

주택의 형식과 디자인 방향에 대한 커다란 틀이 정해진 후, 건축주 부부가 진행한 것은 강 소장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일이었다. 연구년을 맞아 1년 동안 스페인으로 떠난 부부를 대신해 강 소장이 총 책임을 지게 된 것. 그를 신뢰하고 맡긴 만큼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 <서측 입면도>

“한순간에 여운재의 건축주이자, 설계자이자 모든 권한과 책임을 맡게 되면서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건축주와 대화할 수 있었던 방법은 모바일 메신저와 이메일뿐이었죠. 현장 상황을 전달하면 건축주는 대부분 ‘알아서 잘해 달라’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절 신뢰하는 건축주께 감사함과 책임감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제 고집보다는 ‘건축주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에 따라 움직였죠.”

그렇게 여운재는 부부에게 쏙 와 닿는 알찬 공간으로 탄생했다. 박스 형태의 외관은 스터코와 화강석, 목재 사이딩으로 마감했는데, 목재 사이딩과 전체적인 부분을 무채색으로 통일해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연출했다. 

 

▲ 주출입구.

이웃 간의 정이 쌓이는 공간
두 가구가 거주하는 공간이었기에, 설계 단계부터 철저하게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다. 임대세대와 주인세대는 출입구를 따로 배치해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했으며 각자의 주차장을 설치해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 주인세대 거실.

주인세대 1층은 주방/식당, 2개의 다실로 구성했는데, 이 중 핵심은 다실이다. 
“1층에 거실 대신 자리한 입식과 좌식의 다실은 건축주가 이웃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파트에서는 어려웠던 부분이지만, 단독주택에서는 쉽게 이뤄질 수 있죠. 취미로 커피 로스팅을 배운 건축주가 직접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고, 우려낸 차를 마시며 깊은 대화를 통해 친목도 다질 수 있습니다.”

공용공간인 1층과 달리, 2층은 안방, 가족실, 2개의 아이 방 등 개인적인 공간을 배치했다. 현재 아이 방 하나는 서재로 활용하고 있는데, 창의 구성이 세입자의 마당으로 나 있어 세입자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시선을 차단할 수 있는 삼각형 베이 윈도우(Bay Window)를 설치했다.

▲ 임대세대 마당.

임대세대는 1층을 주방/식당 겸 거실로 꾸몄는데, 전용 마당인 데크와 이어질 수 있도록 해 작은 마당에서 가든파티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식당 겸 거실 옆쪽에 위치한 방은 안방 겸 다용도 방으로 사용 중이며, 2층은 사적인 영역인 2개의 방과 가족실이 자리하고 있다. 2층의 가족실은 다락과 오픈돼 연결돼 있어 실제 거실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 주인세대 거실.

새나가는 열을 잡아라 
오랜 기간 머무는 장소이기에 단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단열재로는 셀룰로오스를 선택했는데, 신문지를 재활용한 셀룰로오스 단열재는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유리섬유 대비 3배 높은 밀도의 고단열을 유지 가능하다. 특히 주인세대는 내부에 가변형 기밀막을 설치해 여름과 겨울의 습기의 움직임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다. 벽은 공용부분을 친환경 페인트로, 방은 도배지로 마감해 기능에 맞는 깔끔함을 더하고, 바닥재는 천연 코르크바닥재로 마감했다. 

“임대와 주인세대 둘 다 단열재와 건강한 자재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친환경적인 자재에 집중한 주인세대와 달리 임대세대는 내구성과 가성비 좋은 제품을 택했죠. 고단열은 주택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무조건 벽체가 두꺼워지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새나가는 열을 막고 기밀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죠. 설계부터 어떤 자재를 고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진 = 노바건축사사무소 

▲ 주인세대 주방/식당.
▲ 주인세대 다락.
▲ 주인세대 다락 계단.
▲ 주인세대 거실.
▲ 주인세대 가족실.
▲ 거실/계단.
▲ 주인세대 다락.
▲ 다락 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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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소개 | (주)노바건축사사무소 강승희 소장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을 졸업한 강승희 소장은 현재 (주)노바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강 소장은 목조건축대전 대상,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경기도건축문화상 본상 등을 받았으며,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 함께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따뜻함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