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사와 개심사
보원사와 개심사
  • 나무신문
  • 승인 2015.08.3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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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산 아라메길 1코스 중 보원사지~해미읍성
▲ 개심사 종각.

유서 깊은 절 두 곳이 산줄기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둥지를 틀었다. 보원사와 개심사가 그 절인데 보원사는 터와 몇몇 유물만 남았다. 보원사지에서 출발해서 산을 넘어 개심사에 도착한 뒤 해미읍성으로 발길을 향한다. 

 

사라진 절, 보원사
1000여 명의 승려가 기거했으며 100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던 보원사가 절이 있었다는 몇 개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 보원사지.

3만1000여 평에 이르는 광활한 절터에 5층석탑(보물104호), 보승탑(보물105호), 보승탑비(보물106호), 당간지주(보물103호) 등만 남아 과거를 말해주고 있다.   

▲ 보원사지 당간지주.
▲ 보원사지 오층석탑.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도 보원사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을 보고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면 보원사지가 나온다.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계곡 주변 식당과 민박집이 없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이 골짜기는 심심산중이다. 

푸른 계곡을 가두고 있는 산과 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다 보면 드넓은 터가 나온다. 흙먼지 날리는 흙길 옆에 넓은 풀밭이 있고 저 멀리 서 있는 당간지주와 5층석탑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넓어서 멀다. 당간지주를 지나 탑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5층석탑이 당당하다. 위세를 상징하듯 기단에 사자상을 새겼다. 1945년 광복 이전에는 상륜부 찰주에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련, 용차, 보주 등의 부재가 완전하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탑은 완전체가 아니다. 존재 자체가 미완이어야 한다. 그 앞에 선 누군가와 함께 할 때 탑은 미완으로 싸인 무량수의 꺼풀을 하나씩 벗는 것이다. 

황량한 벌판으로 남은 절터에서 길은 산으로 접어든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뒤를 돌아본다. 절 없는 절이 더 절 같다. 

▲ 보원사지에서 개심사로 넘어가는 산길.
▲ 오학리쉼터를 지나 개심사로 가는 길
▲ 개심사 대웅전.

개심사 굽은 기둥
산으로 접어든 길이 무덤덤하다. 높지 않지만 산을 넘는 길이니 어디 한 곳에서는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기 마련이다. 

개심사 입구 0.7km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개심사 방향으로 걷는다. 개심사 입구에서 개심사까지는 내리막 오솔길이다. 길은 개심사 뒤안으로 이어진다.  

개심사 또한 백제시대에 창건됐다. 대웅전 건물이 보물 제143호다. 명부전과 심검당은 각각 문화재자료 제194호와 제358호다. 

개심사는 조선 성종 때 불이 나서 다시 지었는데 심검당도 당시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후 조선 후기에 중창되었다고 전해진다. 

▲ 개심사 절집. 나무의 생긴 모양 그대로 기둥과 보를 만들었다.

심검당 외관에 마음이 끌린다. 심검당 건물 왼쪽에 이어지은 건물의 기둥과 보가 휘어지고 굽은 나무 모양 그대로다. 살아 있을 때 모습 그대로 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종각의 기둥 또한 휘어지고 굽었다. 굵은 나무기둥 네 개가 살아 있을 때 모습 그대로 종각의 기둥이 되었다. 살아 있는 나무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다.   

 

▲ 개심사에서 해미읍성으로 가는 길. 해미읍성 전에 오학리쉼터가 먼저 나온다.

오학리쉼터 지나 해미읍성까지
개심사 일주문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아라메길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오르막 숲길을 따라가면 임도가 나온다. 

▲ 개심사에서 해미읍성으로 가는 길.

임도를 따라 오학리쉼터, 해미읍성 방향으로 걷는다. 오학리쉼터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 장승이 서있다. 장승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서면 사방이 훤히 보이는 능선길이다. 

풀밭 위에 불에 탄 나무 몇 그루만 군데군데 서있다. 예전에 산불이 났던 곳이다. 타다 남은 나무 몇 그루가 고사목 같다. 그 아래 푸른 풀과 작은 나무가 다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새 생명의 기운을 받아 발걸음이 가볍다. 능선을 넘는 바람에 땀이 마르며 시원하다. 숨을 깊게 마시고 길게 내뱉는다.  

오학리쉼터는 이런 풍경 가운데 있다. 오학리쉼터를 지나면 길은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숲길을 걷는다. 흐린 날씨에 하늘을 가린 숲이 어둑어둑해진다. 걸음을 재촉한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 서니 멀리 사람 사는 마을이 보인다. 논 옆길을 걷고 마을 뒷동산 텃밭을 지나 해미읍성을 만난다. 

▲ 해미읍성.

사적116호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부터 세종에 걸쳐 쌓은 성이다. 효종 재위 기간인 1652년까지 230여 년 동안 병마절도사영이었으며 이후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간 뒤에 관아 가 들어섰다. 1895년까지 243년 동안 내포지방 12개 군현의 군권을 지휘 했던 곳이기도 하다. 

▲ 해미읍성 회화나무.

특히 이곳은 1578년(선조11)에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 동안 근무했던 곳이다. 조선 말기에는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기도 했다. 

성 안에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와 3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있어 옛 일을 이야기 해주는 듯 하다. 

▲ 해미읍성 느티나무.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