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역사와 전설의 섬 티니안
여행/역사와 전설의 섬 티니안
  • 장태동
  • 승인 2007.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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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발트 빛 바다와 별모래 가득한 백사장, 파란 바닷물이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 초록의 푸름이 아니다. 파란 색, 너무나 파란빛이다. 바다가 시작되거나 혹은 바다가 끝나는 곳엔 백사장이 있다. 파란 바다와 대비되는 반짝이는 흰모래 빛이 눈부시다.

적도 태양은 백사의 해변에 작렬하고 열기를 머금은 땅덩이가 달아오른다. 남태평양의 기후는 공기 중에 뜨거운 습기를 머금게 하고 사람이나 식물이나, 생명이 없는 모든 것들도 그 속에 살게 한다. 그러나 불쾌하거나 짜증나지 않는다. 흰 거품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에서 발생하는 음이온이라든지,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은 맑은 공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숨 쉴 때마다 담배와 공해로 굳은 호흡기가 풍화작용으로 깎여 나가는 기분이다. 바닷물 속에 발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파란 색으로 온몸이 물들 것 같다. 산소처럼.

타가해변 갯바위 아래로 내려간다. 반짝이는 모래 알갱이가 하나같이 별모양이다. 하늘에 별이 낮이면 티니안 타가해변에 다 내려와 놀다가나 보다. 우리는 그 별을 밟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경사가 심하지 않았다. 가까운 바다는 모래처럼 흰빛이고 멀어질수록 옥빛에서 코발트블루로 색이 변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그냥 내버려두면 물결에 밀렸다 쓸렸다 하며 그대로 바다가 될 것 같다. 

티니안은 사이판에서 페리호를 타고 닿는다. 30여 분, 바닷길을 가르면 역사와 전설의 섬 티니안을 만날 수 있다. 원주민인 차모로족, 그들의 시조인‘타가’에 대한 전설은 그 흔적과 함께 아직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숱한 외세의 침략에도 그들의 말과 혼이 끊이지 않고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타가’의 전설 때문이었다. 평화의 신 ‘타가’. 그 후예들은 어떠한 전쟁도 반대하며 그 곳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티니안의 해변이나 여러 지명들에서도 ‘타가’라는 이름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타가 해변, 타가 하우스 등이 그것이다. 시원스레 펼쳐진 타가의 바다. 해안과 나무그늘, 절벽으로 이어진 그 곳은 오염 없는 세상 그 자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은 잔혹한 역사적 사실을 품고 있었다. 티니안은 또 일제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의 영혼들이 떠도는 섬이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패한 일본군이 물러갔지만 이곳에 끌려왔다 목숨을 부지한 대한제국 사람들은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그곳에 정착한 한국인 1세대들은 평화와 반전의 신 ‘타가’의 후예들과 어울려 살았다. 지금 그곳에는 한국인 2세, 3세들이 계를 꾸려가며 살고 있다. 그들은 씨족 사회의 제사장들이 구전으로 역사를 전하듯 그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계모임의 최고 어른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떠나가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감나무 울타리 밖까지 나와 손 흔드는 그 누구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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