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적 조각품으로서의 목가구’展을 마치고
‘기능적 조각품으로서의 목가구’展을 마치고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4.13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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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COLUMN

[나무신문 | 가람 김성수‘생태적 예술‐­일상의 예술_2015 예술의전당전’을 잘 마쳤습니다. 

훌륭한 작품으로 전람회를 눈부시게 한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전람회는 ‘생태적 일상의 예술’을 담은 ‘기능적 조각품(functional sculpture)’으로서의 스튜디오 퍼니처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매우 높아졌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하게 했습니다. 생태적 일상의 예술을 지향하는 조형주의 가구에 대한 일반인의 호응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겠지만, 관계 전문가나 오피니언 리더의 관심도는 ≺기능성과 조형성의 유기적 조화≻, 즉 명료한 쓰임새와 조형적 성숙도가 잘 녹아든 조형가구에 대한 올곧은 비평과 사회적 트렌드의 반영이기 때문에 더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지요. 

▲ 박연규_정상에서.

새삼스럽지만, 사회적 리더의 높은 관심도는 우리가 추구해온 조형철학과 조형언어에 대한 시대정신의 반응이라고 볼 수 있지요. 또 지금까지 끊임없이 가다듬고 성찰해온 우리 성과에 대한 냉혹하리만치 엄격한 현실적인 평가라고 믿습니다. 특히, 중진 미술평론가로 부터의 “기능성과 조형성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았다”라는 격찬은 가슴을 더 뜨겁게 하지요. 하지만, 휴일 기준 하루 1500여명이 관람하는 폭발적인 성원과 더불어 고무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성과에 대한 과신과 오만으로 자칫 성찰과 정진을 소홀이 할 수도 있기에, 한편으로는 편치 않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미국이나 유럽 등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조형철학과 조형언어, 예술 융합을 통한 일상의 예술 실천 등에 더 큰 관심을 보여 내심 아쉬움이 많았으나,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DNA에 기반을 둔 글로벌 감성가치관의 진정성과 가치를 인정한 것으로 짐작합니다. 따라서 숱한 곡절을 뚫고 나온 조형가구의 방향성과 신념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조형가구의 정의는 ‘기능적 조각품’입니다. 명료한 쓰임새에 조형적 아름다움이 합해져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쓰임새을 가진 조형물을 특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조형적 고유성입니다. 특히, 스칸디나비안 스타일과 조지 나카시마 스타일의 아류와 유물 복제·모방품류에 점령당하다시피한 현실에서, 오늘의 한국성을 담은 우리만의 독립 장르를 추세우는 역할인 조형적 캐릭터 표상은 더욱 절실한 것이죠. 그렇지만, 장식성 표현과잉은 금물이지요. 과다한 치장은 오히려 조형 핵심을 놓치는 요인이 되니까요. 치장 욕심을 비우고 물성의 순수한 본성을 따르는 것이 조형적 완성도가 높은 결과를 만든다는 걸 숱한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되지요.

일반적 가구의 필수 요소인 사용자 편의성과 제작 스킬 확보는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조형적 고유성 확립이 더 절실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더 나은 쓰임새 찾기와 스킬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본능적 장치가 몸속에 내재돼 있으므로 반복과 숙련으로 자동 진화하지만, 고유성 확립은 발상의 자유와 치열한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한 의지와 노력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을까?’ 보다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라는 상상력의 믿음이 더 먼저라는 것이죠. 또 ≺제작 스킬 디테일과 마감은 기술이 아닌 정성≻이며, ≺조형가구는 공학이 아닌 생활 감성≻이기에 ≺기능을 담은 조형 성숙도가 작가 역량 판단의 가장 중요한 잣대≻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작가적 영혼이 없는 손재주만의 허상≻이 갖는 ‘그림자 능력’의 비애를 되새김질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형적 고유성 확립 방법론도 공공성 전람회를 통한 ≺인터랙션-융합-일상의 예술≻ 방식이 가장 효과적일 것입니다. 

▲ 이은미_五行.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사회에 만연돼 있는 과도한 편중성은 디자인·예술 분야도 예외는 아닙니다. 역사는 또 우리에게 말하지요. 산업혁명과 함께 대량생산, 대량공급을 성취한 제품디자인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의 삶의 질 향상과 인류 진보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 편중성에 대한 반동으로 결국 특정 소수를 위한 ‘미술공예운동’을 불러내게 된 사실을. 따라서 제품디자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과 같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편의성·보편성 위주 디자인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특정 소수를 위한 고유성 중심 디자인도 꼭 필요한 것이지요. 제품디자인 유형을 단지 손으로 만든다고 해서 진정한 수제(手製)가 안 되는 것처럼, 고유성 표상이 최고 가치인 조형가구와 보편성과 대량보급이 목표인 제품디자인은, 기획 단계부터 각자의 적합성과 고유성을 가질 때 최상의 품질을 이루겠지요. 

웹(WEB)시대와 함께 도래한 글로벌 고도문화사회에서는 특정 기준 보다는 다양성과 개인별 고유성이 훨씬 중요한 시대정신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제 서구 중심 예술·문화 교육에 의한 집단세뇌 현상으로 볼 수 있는 ‘북유럽 스타일 기준 세련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각 고유성 위주의 새롭고 다양한 미적(美的) 가치기준에 따라, 우리가 추구하는 ≺형태에 기능을 담는≻ 조형성의 가치도 높아지겠지요. 따라서 ‘목재를 가지고 이런 표현도 가능하다.’라는 타 재료 특성을 변용한 작업도 필요하지만, ‘이 표현은 오직 목재만이 가능하다.’라는 목재 특유의 곧고 장중한 느낌의 물성(고유성)을 녹여내는 조형언어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늘 말하지만, 전통문화와 한국적 조형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합니다. 아직 정부 부처 끼리조차 명확한 개념 정의와 주장 합치가 덜 돼 보이지만, 조선시대 이전 유물 기준으로 우리 것의 우수성만을 강조하는 ‘국수주의적 전통문화’와 선사시대부터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오며, 시대정신과 더불어 민족문화를 계승, 발전해온 ‘한국적 우리문화’를 혼돈 하는 오류는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 성윤헌 작가의 ‘5현’

‘한국전통의 현재적(現在的) 재해석’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유지해오고 있는 우리 조형철학의 핵심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정신이자 뿌리이며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한국적 디자인 개념은 유물로 박제된 전통을 복제하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티브로 녹여 ≺우리 DNA에 기반을 둔 감성가치관을 동시대(同時代)에 적합한 조형체계와 조형언어로 담아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떻게 보면 ‘한국전통의 현재적 재해석’이라는 말도 개념 정의가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요.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는 한국성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스무 해정도 살아온, 우리 정체성을 가진 한국인(이미 뼛속까지 우리 DNA를 가진 사람)이 다른 나라(민족) 것을 모방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한 것이라면 모두 한국성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조선시대 이전 양식과 풍속류만을 한국적이라고 우기는 미안함이나, 일제강점기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만 올곧은 ‘한국문화’를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잘 해오고 있지만, 사회적 공공(公共)기능으로서의 미션과 실천에 더욱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공인(公人)이며, 공인은 공공재(公共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스킬 디테일이 훌륭한 성과일지라도 치열한 작가정신, 즉 ≺새로운 생각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직업작가≻가 아닐 경우, 세상은 그것을 고급취미라고 분류합니다. 수십 년 내공을 쌓아온 뛰어난 기능장이라도 작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 박종건_바다를 너에게.

놀랍게도 세상은 이미 작가주의적 삶에 올인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올곧은 감성코드 기반의 새로운 생각의 가치 창조≻를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그래서 세상은 공인이 된 작가에게 공공재로서의 역할에 따른 사회적 비용(공공적 예우)을 일정하게 보전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현실적 운영의 어려움에 따른 목적성 이탈과 정체성 혼돈을 잘 극복하여, 힘들더라도 청렴하고 줏대 있는 작가적 삶 지속만이 우리의 지향점인 ≺행복한 작가주의≻를 이룰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분야인 문화·예술적 완성도와 작가적 성공은 느리게 이루어지지요. 어떤 분야든 다 쉽지 않겠지만, 문화·예술 분야는 더 느리며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 경력이 일천하다고 해서 미리 움츠려들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게 그렇듯 양면성이 있으니까요. 말하자면 조형 성숙도와 작업 완성도는 부족할 수 있지만, 반면에 발상의 신선도는 넘칠 테니까요. 또 수십 년 이상의 작가 경력을 가졌다고 해서 치열한 성찰과 정진을 소홀이 하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지요. 그때 쯤 꼭 찾아오는 주기성 불청객인 매너리즘과 슬럼프도 잘 극복해야만 합니다. 

어떤 분야든 빨리 이루려는 속성(速成)주의는 늘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우리처럼 압축 성장을 경험한 나라일수록 ≺제대로 이루어가는 것≻을 ≺느리게만 가는 낭비≻라고 보는 잘못된 생각에 익숙해져 있지요. 물론, 모든 것이 속성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아닙니다. 반복으로 숙련되는 훈련 유형일 경우는 훈련 총량을 늘려 전체 기간을 줄이는 속성(速成)방법만으로도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평생을 도전정신과 작가적 양심으로 살아야 하는 직업작가는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새로운 생각의 가치와 자긍심으로 온갖 시련을 이기게 하는 작가정신은 오직 성찰과 긴 호흡, 고독한 레이스를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으니까요. 

▲ 김숙경_호모사피엔스2_책상.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표상하며 그것을 공식화하는 장치가 전람회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전람회를 통해서만 자신을 공공적으로 드러내며, 비평과 호응의 인터랙션 속에서 수많은 난관 극복과 성찰·정진으로 마침내 공인으로서의 직업작가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길을 가는 데는 불굴의 용기와 신념, 치열한 작가정신과 열정이 꼭 필요하지요. 생각의 가치 창조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는 반드시 도전이 필요합니다. 또 도전에는 언제나 모험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실패와 질책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  세상은 그를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전람회를 통해 자신을 표상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작가라고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예술의전당에서의 전시·발표는 정책적인 고려가 아닐 경우 쉽지 않은 일이지요. 대관 조건과 심사가 까다로운 것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시장으로서 위상 유지와 또 전시를 한 경우, 일정한 작가적 신분상승이 되는 에스컬레이터 역할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자칫 오만해질 수 있는 자기함정이 되기도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전시조직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을 사전 심의하고 선별하는 것은 예술의전당의 위임기능으로써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지요. 오로지 끝없는 성찰과 정진만이 작가적 역량을 갖추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하는 페어는 당연히 매출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러나 발표를 목적으로 하는 전람회는 작가적 가치 확보가 더 중요하지요. 또 성격상 매출 자체가 목적인 일반 공산품과는 달리, 생각의 가치를 교환하는 방식인 작품의 매각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만약 전람회에서 협의가 잘 돼 본래 가치로 작품을 매각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겠지만, 단지 팔기위한 목적 때문에 가치 이하로 매각할 경우, 결국은 자기 가치를 스스로 낮추며 끝내는 작가적 생명을 줄이는 결과가 되고 말지요. 작품으로 평생을 가야하는 직업작가는 코앞의 작은 이익이 아닌, 긴 호흡을 통한 ≺작가적 가치 확보가 곧 삶의 질 확보≻가 될 것입니다. 작가적 가치 상승은 작가적 자존감을 갖게 하여, 결국 튼실한 자긍심을 가진 행복한 작가의 삶이 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죠. 또 작가적 자존감은 직업작가에게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매너리즘과 슬럼프 현상을 잘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작가적 자존감과 ≺자만심의 가치≻를 잘 아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가람 김성수 KIM Seong Soo-karam

조형예술가, 가구작가 Art Director & Professor
한국조형예술원(KIAD) 교수, 평생교육원 원장
AFPA도제학교-가람가구조형학교 아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