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인문학의 위기
문화칼럼-인문학의 위기
  • 김도언
  • 승인 2007.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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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드리야르가 현대 사회의 특질을 ‘소비’라는 키워드로 간파해낸 이래, 소비 패턴의 일정한 집중을 뜻하는 트렌드라는 말이 시장의 중심 개념으로 대두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학문 쪽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 유행하는 학문과 퇴조하는 학문 사이에 명암을 만들었다. 흔히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도 절박한 생존의 조건이나 형편이 강제한 시장의 논리 앞에서 파생된 레토릭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정말 위기일까? 말그대로 철이 지난 것일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쪽이다.  인간은 성찰을 수행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다른 동물들과 구분된다. 반성의 사유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신활동이다.

인간은 밥만 먹으며 살 수는 없고 쾌락만을 좇으며 살아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본디 사람의 사회는 타자와 어울리면서 조화를 추구하고 질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고래로부터의 지혜가 가르치는 인간의 본질적 가치는, 타자를 이해하고 세계를 끊임없이 개조하며 새로운 미적 가치를 창조하는 데 있다. 문학, 역사학, 철학, 종교학, 인류학,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등으로 구성되는 인문학은 이 같은 정신의 사회적 생산 활동을 독려하고 권장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해 인문학은 인간의 가장 풍요로운 정신의 작용이 보편적인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창조적 활동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특정한 생존의 조건이나 형편과는 상관없이 인문학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문명의 꾸준한 진화와 IT 혁신을 통해 생활의 이기는 경이로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부산물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가중되어 사회 구성원 간, 인종과 문명간의 대립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전쟁과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살육이 자행되고 있다. 생존의 논리가 모든 생활의 질서를 강제함으로써 태동된 갖은 위기 앞에 직면해 있는 오늘 날 우리가 인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의 차원을 고민하게 해주는 정신적 노력의 최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어쩌면 소비가 주도하는 시장 논리, 경제 원리가 보다 첨예해지면 첨예해질수록, 비루해지면 비루해질수록 그 존재 가치가 빛을 발하는 학문인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 자체가 지나치게 인문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