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마음을 갈다
붓으로 마음을 갈다
  • 나무신문
  • 승인 2015.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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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남 당진 필경사

▲ 심훈 동상.
심대섭(심훈) 외 60명은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을 선언하고 그 시위운동을 개시함을 듣자 그 취지에 찬동하여 정치변혁을 목적으로 많은 군중과 함께 불온 행동을 함으로써 치안을 방해하려고 기도하여 1919년 3월1일 경성부 파고다공원에서 위의 조선독립을 선언하고,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는 수천인의 군중에 참가하여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경성부 내의 각 곳을 광분하여 치안을 방해하였다.  - 3.1만세운동으로 재판을 받은 심훈의 판결문

 

청년 심훈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효사정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심훈의 시비가 있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날이 오면>을 새겼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나는 밤하늘에서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오면> 부분

 

▲ 서울 흑석동에 있는 심훈 시비.
흑석동에서 살던 심훈은 문학청년이었다. 순수했으므로 피가 끓었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몸을 먼저 던졌고 글로 날을 세웠다.

▲ 심훈이 감옥에서 어머니께 쓴 글 원고 사본.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옥에 갇히기도 했다. 옥에서 어머니께 글을 썼는데 그 일부를 소개한다. 

 

(전략) 경찰서에서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되어 나와서 이곳에 온 뒤에도 밤이면 몹시 앓았습니다. 병감은 만원이라 옮겨주지도 않고 쇠잔한 몸에 그 독한 나날이 뼈에 사무쳐 어제는 아침부터 신음하는 소리가 높았습니다. (중략) 우리는 모두 일어나 그의 머리맡을 에워싸고 앉아서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덮쳐 오는 그의 얼굴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중략) 금세 운명을 할 노인의 손아귀 힘이 어쩌면 그다지도 굳셀까요, 전기나 통한 듯이 뜨거울까요? (하략)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퇴한당한 심훈은 1920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민족주의 운동을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으로 확산하기 위해 극문회를 조직했다. 1923년 중국에서 귀국한 그가 최승일 나경손 김영팔 임남산 등과 신극연구단체인 극문회를 조직한 것도 그 맥락이었다.
 

영화인 심훈
심훈의 활동은 문학에서 그치지 않았다. 1923년 귀국한 그가 신극연구단체 극문회 활동을 시작했으며 연극과 영화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영화 <장한몽>에서는 이수일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는 식민지 현실을 다룬 영화 <먼동이 틀 때>의 각색과 감독을 맡아 성공을 거두었다.  

<먼동이 틀 때>를 만들고 그는 조선일보사와 경성방송국 등에서 잠깐 동안 일을 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1932년 고향인 충남 당진으로 내려간다.

다시 조선일보사에서 잠깐 동안 일을 하긴 했으나 바로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그는 1934년 당진에 필경사를 짓고 작품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 심훈이 글을 쓰던 집. 필경사.
‘상록수’의 산실 필경사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에 가면 작은 초가집 한 채가 있다. 이곳이 충청남도 기념물 제107호 필경사다.

필경사는 심훈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이다. 큰방과 마루방, 안방, 부엌, 화장실, 욕실 등의 공간을 집안에 배치했다. 당시에 화장실과 욕실을 집 안에 두는 방식은 일본식 건물의 일반적인 형태였다. 

건물 일부에 베란다를 만들고 그곳에 화분을 놓을 수 있게 만든 것은 당시로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러면서도 집 안팎의 대부분은 전형적인 한국의 시골 마을 풍경과 어울리게 전통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필경사 앞마당에 있는 심훈과 그의 작품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시비가 여행자를 반긴다. 심훈 기념관에 가면 그의 인생과 문학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필경사의 ‘필경’은 심훈이 직접 붙인 이름이다. 논밭을 일구듯이 붓으로 사람의 마음을 일구겠다는 뜻의 이름이다. 자신의 마음을 일구는 것은 물론, 독립을 위한 민중의 마음을 일구고자 했던 그의 뜻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의 대표작 ‘상록수’도 필경사에서 집필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8월15일 심훈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했으며 그의 차남이 받았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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