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그릇
국밥 한 그릇
  • 나무신문
  • 승인 201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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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광주광역시

▲ 하나분식 장터국밥
양동시장의 밤
해가 다 진 뒤 광주천 부근 모텔에 숙소를 정하고 광주의 밤 풍경을 담으러 길을 나섰다. 조금 걷다보니 옛 전남도청이 나왔다.

옛 도청 앞 광장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여러 나라의 무희가 무대에서 각 나라의 전통 춤을 선보이고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축제 마당에 마련된 여러 나라 문화와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돌아다녔다.

도심의 휘황한 불빛을 따라 간 곳은 유흥가였다. 온갖 식당과 술집, 상가가 골목마다 즐비했다. 그 거리에 불빛은 밥을 먹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다. 재래시장에서 파는 따듯한 국밥이 먹고 싶었다.

양동시장을 찾았다. 장은 파장 분위기였다. 몇몇 골목에 불을 밝혔지만 손님은 없고 주인만 보였다. 

장터사람들은 친절했다. 옛날에 노무현 대통령이 국밥을 먹은 집이 있다고 해서 그 집을 찾아갔다. 

▲ 하나분식에 가면 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밥을 드신 자리가 있다
식당 테이블에 ‘노무현 대통령 국밥 드신 자리’라는 문구를 붙여놓았다. 손님 중에는 그 자리에 앉아보고 싶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단다.

그날도 젊은 남녀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꼭 그 자리에 앉아서 노무현 대통령이 먹었던 것과 똑 같은 국밥을 먹어야겠노라고 식당 주인아줌마에게 말했더니 아줌마가 웃으며 알았단다.

그냥 기다리기 미안해서 우선 막걸리 한 병을 시키고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나와 주인 아줌마의 대화를 들었는지 그 자리에 앉았던 젊은 남녀가 자리를 뜬다. 나는 얼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먹은 국밥은 머리고기와 내장을 넣어서 끓이는 ‘장터국밥’이다. 들깨가루를 곱게 갈아 넣어서 꺼끌거리지 않고 고소하다. 국밥에 들어간 콩나물이 아삭하게 씹히고 시원하다. 기본적인 국밥의 맛에 콩가루와 콩나물이 들어가 맛이 훨씬 더 풍성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장터국밥을 다 드시고 주인아줌마에게 ‘맛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고 한다. 또 아줌마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까 ‘멀리까지 시집와서 고생한다’는 말도 해줬다고 한다.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이 닿은 주인아줌마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날이면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말아서 그 자리에 올려놓는단다. 국밥 한 그릇에 양동시장의 밤은 깊어간다.

 

▲ 광주천
무등산 보리밥
광주의 아침은 신선했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상쾌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숙소에서 쉬다가 광주천 둔치를 따라 걸었다. 광주천은 광주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 했다. 오전 댓바람에 광주천을 따라 오가는 사람들이 꽤 된다. 

무등산국립공원 기슭에 있는 증심사를 찾아가는 길에 보리밥집이 여기저기 보인다. 뷔페식으로 보리밥을 파는 집도 있고 일반 식당처럼 다 차려주는 집도 있다. 뷔페식은 너무 번거로워서 밥상을 차려주는 집을 찾아 들어갔다. 

▲ 명승식당 산채보리밥. 갖은 나물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먹는다
손님들은 대부분 절 구경이나 등산을 하러온 사람들이지만 작정하고 보리밥을 먹으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보리밥 자체가 맛있다. 갖은 나물을 넣어 고추장에 비벼먹는다. 비빔밥을 그냥 먹어도 좋지만 함께 차려지는 열무잎에 싸먹는 맛이 별미다.

열무잎을 펼쳐서 비빔밥을 얹고 된장을 조금 넣는다. 쌈을 싸서 한 입에 넣는다. 싱싱한 열무잎을 씹으면 상큼한 즙이 입안에서 톡톡 터진다. 열무잎이 향긋하다. 주인 말이 쌈을 위해 품종을 개량한 열무란다.

 

▲ 중심사 전경
증심사 가는 길
증심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윤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 혜조국사가 다시 짓고 조선시대 세종 임금 때 세 번째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때 재건했다. 한국전쟁 때 건물이 대부분 불에 탔는데 당시 국보급 문화재들도 분실됐다. 그 이후 1970년대부터 건물을 복원했다.

증심사로 가는 길에 문빈정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문빈정사는 문익환, 고은, 김지하 등이 강연이나 담론을 하던 곳이며, 시인 김남주가 지선스님의 주례와 고은 시인의 사회로 혼례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 증심사
문빈정사를 지나 올라가다보면 의재 미술관, 춘설헌(의재 허백련이 20년 동안 지내던 집. 광주광역시 지정지념물 제5호) 등 의재 허백련의 흔적들을 만난다.

증심사에 도착하면 종무소 앞 돌담과 거대한 나무가 여행자를 반긴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산자락에 아늑하게 안긴 절 마당이 나온다.

▲ 중심사 입구 거목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삼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고려시대에 만든 석조보살입상(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도 절 한 쪽을 차지하고 있다. 보물 제131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신라시대에 만든 철불이다. 1934년 대황사에서 가져왔다고하는데 정확하게 확인할 길은 없다.

오백전도 눈에 띄고 절벽에 새집처럼 붙은 산신각에도 마음이 가지만, 증심사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문화재도 아니고 안내판도 없는 두 개의 탑이다.

▲ 증심사에 있는 이름 없는 두 탑
절 한 귀퉁이에 탑 두 개가 나란히 서있다. 탑이 아름다운 건 비례와 균형에서 비롯되는 하늘로 솟구치는 상승의 기운과 땅에 깊이 뿌리내린 우직한 힘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탑에는 그런 기운이 없다. 심지어는 지붕돌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자꾸 이 두 탑에 눈길이 머물고 마음이 간다.

절을 다 돌아보고 나오면서 다시 한 번 뒤돌아본다. 절 전체의 그림에서 저 탑을 지워버린다면 좀 허전하다. ‘세상에는 먼지 하나도 다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증심사 3층석탑.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다
▲ 증심사 석조보살입상.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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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