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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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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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평창

▲ 이슬 맞은 벌개미취
휘닉스파크의 아침
아침 산책이 즐거운 건 꽃에 맺힌 이슬방울 때문이다. 햇살에 이슬이 증발되기 전에 벌개미취 꽃밭으로 길을 나섰다.

꽃이 다 진 줄 알았는데 늦게 핀 꽃 덕분에 꽃밭에 앉아 보기도 했다. 꽃밭에 앉으면 꽃 높이와 눈 높이가 같아진다. 

이슬을 머금은 꽃잎은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자태 보다 청초함이 돋보인다. 이슬방울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꽃 앞에 앉은 사람의 상이 맺힌 걸 볼 수 있다. 

벌개미취 꽃잎 위 이슬방울에 내 얼굴이 맺혔다. 수백 수천의 꽃송이는 그렇게 아침마다 자기의 꽃잎 위에 이슬을 받아놓고서 다른 꽃의 상을 품고 있었다.

붉은 꽃밭 끝에서 푸른 풀밭이 시작된다. 휘닉스파크 정상으로 올라가는 곤돌라 운행시간을 기다리며 풀밭을 걸었다.

▲ 곤돌라를 타고 휘닉스파크 정상 몽블랑에 오른다
곤돌라가 도착한 곳은 해발 1050미터다. 휘닉스파크는 이곳에 ‘몽블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몽블랑은 잘 꾸며진 공원이다. 솟대와 장승, 작은 연못과 양, 파란 하늘과 가을꽃이 핀 길을 걷는다.

달콤한 커피 한 잔 마시며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 놓인 의자에 앉아 산하를 바라본다. 몽블랑에 있으면 몽롱해져서 남루한 생활을 잊는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앉아 있으면 몽롱한 것도 지루해지는 데 그게 몽블랑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된다. 지루한 몽롱을 깨우는 건 대부분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생활의 끄나풀이다.

 

▲ 몽블랑 정상에서 만난 양
하늘목장 초원의 길
지난 9월 문을 연 하늘목장은 여의도 크기의 4배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땅의 넓이를 이야기할 때 왜 여의도를 기준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좀 작은 땅이면 여의도공원(옛날에는 여의도광장)의 몇 배라고 하고, 다만 더 작은 땅이면 축구장 넓이를 기준으로 따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여의도 보다 4배나 크다고 설명하는 하늘목장 입구에 도착했다.

▲ 몽블랑에서 바라본 풍경
사실 하늘목장은 40년 전에 ‘대관령 한일목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을 ‘하늘목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난 9월부터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목장은 1단지와 2단지가 있는데 1단지는 목장에서 운영하는 트랙터마차(유료)를 타고 돌아보거나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곳이고 2단지는 말을 타고 전망 좋은 곳까지 올라가서 목장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외승체험’ 장소다.

▲ 하늘목장 승마체험
외승체험은 말을 어느 정도 탈 수 있는 성인을 대상으로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2시간 코스 1인 20만원, 3시간 코스 1인 27만원. 승마 코치 동행) 

나는 촬영 편의상 관계자의 허락을 받고 관계자와 함께 4륜구동 차량을 타고 2단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2단지에 진입하면서 구불거리는 길을 올라가는데 어느 정도 올라가면 시야가 탁 트인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에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군데군데 서 있고 그 아래 길이 구불구불 났다.

‘아! 말을 탈 수 있었으면, 지금이라도 말 타는 걸 배울까?’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풍경이다.

구름이 산줄기를 타고 넘는다. 파란 하늘이 어느새 구름에 가렸다. 반대쪽에 펼쳐진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돌아서면 하늘은 다시 파랗다.

바람은 허공으로만 떠다니는 게 아니었다. 푸른 풀밭으로 내려온 바람은 풀잎 하나하나에 다 스친다. 그곳의 바람 앞에서는 나도 풀이 되는 게 낫겠다 싶었다.

 

▲ 하늘목장 초원과 풍력 발전기
안개에 지워진 풍경
1단지에는 즐길 게 좀 있다. 승마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말을 타고 울타리 안 트랙을 도는 승마체험(유료)을 할 수 있으며 망아지 송아지 아기양 산양 등에게 먹이를 줄 수도 있다.(유료)

트랙터마차(유료)를 타고 하늘마루전망대에 올라가서 풍경을 즐긴 뒤에 선자령까지 올라간다.

▲ 선자령 정상 바로 아래 초지. 안개에 시야가 가렸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몇 점 떠 있던 하늘에 안개가 끼어 시야를 가린다. 구절초 각시취 진범 등 꽃이 피어 길을 안내한다.

‘백두대간 선자령’이라는 표석도 안개에 묻혀 희미하게 보인다. 이것도 선자령의 모습이다. 안개 속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안개는 저 먼 곳부터 길을 지우며 다가오고 있었다. 먼저 걷던 일행들이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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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