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책
가을 산책
  • 나무신문
  • 승인 2014.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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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경기도 안성 승마오토캠핑장

▲ 캠핑장. 숲나물 그늘 아래에도 텐트를 칠 수 있다 ⓒ장태동
가을이 품은 하늘

떠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건 ‘가을하늘’이다. 곧 휘발할 것 같은 높고 파란 하늘이 펼쳐지는 날이면 계획에 없는 계획을 짠다.

 

‘어디로 갈까?’ 한 마디 말이 머릿속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이 늦어지면 ‘어디로 갈까?’라는 생각은 머리를 떠나 가슴에서 곧 터질 것 같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집을 나선 ‘가을 외출’길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오늘은 목적지를 이미 정했다.  

 

갑자기 찾아온 몸살에 밤새 근육이 쑤시고 몸에서 찬바람이 일었는데 약을 먹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취안을 했더니 해가 뜨면서 많이 좋아졌다. 아침을 먹으면서 몸살과 작별하는 식은땀을 한 줄금 쏟아내고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했다.

 

약간 어지러웠지만 그것은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얼음조각 같이 반짝이는 햇살 탓이라고 여겼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몇 점 떠 있어 하늘은 더 파랬다. 가을도 가을 안에서 무르익고 있었다.

 

▲ 캠핑장 주변 길을 걷다가 만난 풍경 ⓒ장태동
가을이 품은 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은 가을 속으로 떠나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모든 길은 햇살처럼 전국으로 퍼진다. 안성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안성 모처에는 이미 ‘아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안성까지 가는 데 1시간 걸린다고 한다.

 

가을 햇살은 고속도로도 빛나게 한다. 버스가 달리는 속도만큼 일상은 뒤로 물러나고 햇살 같은 가을 길이 몰려와 와락와락 나에게 달려드는 것 같다. 이럴 땐 버스 맨 앞자리가 최고의 자리다.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안성승마오토캠핑장이었다. 오전의 공기는 신선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전화를 했다. “어딨어?” “캠핑장” “캠핑장 어디?” “어?” “캠핑장 어디냐구!” “어디? 어! 여기 왔어?” “응” “아프다며 어떻게 왔어?” “그냥 왔어”

 

‘아는 사람’들은 숲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로 쉬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아는 사람’들은 “커피?” “밥은 먹었어?” “샌드위치 만들어 줄게 커피하고 먹어”라며 인사를 대신한다. 그래서 나도 한꺼번에 인사를 했다. “응 밥은 먹었는데 샌드위치도 먹을 수 있고 커피가 있으면 더 좋지”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에는 파란 가을 하늘의 향기가 묻어난다. 그 바람을 맞으며 따듯한 커피와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는다. 다른 텐트에서 자고 있던 또 다른 ‘아는 사람’이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해맑게 인사를 한다. 나도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우물우물 인사를 한다. 얼굴과 얼굴로 말과 말로 웃음과 웃음으로 인사를 한 뒤 자리를 일어나 혼자 산책길로 나섰다.

 

옛날에 이곳은 목장이었고 지금도 말을 키우고 말도 타는 곳이라서 숲과 초원과 목책이 어우러진 풍경이 남아 있다.

 

고추잠자리 날아다는 파란 하늘, 그 아래 노랗고 하얀 작은 꽃들, 꽃들을 감싸고 있는 낡은 목책, 푸른 숲,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바람이 불어 꽃대가 휘어져도 꽃에 앉은 잠자리는 날아가지 않는다. 그 장면을 사진기에 담으려 쪼그려 앉아 렌즈를 고정하고 셔터를 누른다. 땀 젖은 등으로 불어가는 바람이 시원하다.

 

▲ 아이에게 잠자리를 잡아 주었다. 손등에 앉았던 잠자리는 잠시후 날아갔다 ⓒ장태동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풀과 풀벌레들의 세상이다. 풀을 헤치고 걷는다. 캠핑장 둘레를 한 바퀴 돌아 출발한 곳에 도착할 무렵 넓은 풀밭이 나왔다. 풀밭 둘레에 밧줄로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그 위에 사마귀와 잠자리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잠자리는 꼬리를 스프링처럼 말고 사마귀는 언제 움직였는지 모를 정도의 속도로 잠자리에게 다가간다. 사마귀의 촉수가 잠자리의 눈에 닿는다. 일촉즉발, 곤충계의 최상위 포식자 사마귀의 승리로 끝날 것이 뻔한 이 대결의 판을 깬 건 나였다.

 

밧줄을 흔들었다. 사마귀는 떨어지고 잠자리는 날아갔다. 먹고 먹히는 자연계의 질서를 깨뜨린 것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떤 생명도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캠핑장에 말이 나타났다. 아이들이 말 주변으로 모여든다 ⓒ장태동
가을이 품은 사람들

텐트로 돌아왔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함께 넣고 ‘짜파구리’를 끓인다. 찬밥과 이런저런 반찬을 차린다. 숲속의 만찬이다.

 

만찬은 음식으로 시작해서 대화로 끝난다. 함께 한 시간만큼 이야기할 것도 많다. 실없는 농담도 좋고 실오라기 같은 일상의 이야기도 좋다. 얘기 하지 않아도 좋다.

 

밥상을 치우고 승마체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캠핑비용 이외에 일정액을 내면 말에게 먹이도 주고 말도 타볼 수 있는 곳이다.

 

▲ 일정비용을 내면 캠핑장 옆에 있는 승마체험장에서 말을 탈 수 있다 ⓒ장태동
캠핑을 즐기는 사람 대부분이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라서 승마체험장에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겁이 나서 말 근처에도 못가더니 나중에는 말 콧잔등을 쓰다듬는다. 말에게 먹이를 주고 말을 타는 것으로 승마체험이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잠자리를 잡아 아이 손등에 놓아줬다. 잠자리는 아이 손등에 한동안 앉아 있더니 이내 파란 하늘로 날아갔다.

 

캠핑의 마지막 시간, 텐트를 걷고 주변을 정리하는 데 ‘아는 사람’들의 손발이 척척 맞는다. “다음에는 우리 어디서 만나지?”

“가을 억새 끝내주는 황매산캠핑장 어때?”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