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通道寺
통도사 通道寺
  • 나무신문
  • 승인 2014.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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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26 - 한국의 사찰 ②

 

▲ 금강계단

입지
통도사는 경주로부터 100여km 떨어진 영취산 자락에 안겨 있다. 원래 영축산은 인도에 있는 산으로서 봉우리 형상이 독수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곳 양산 영축산 또한 인도의 영축산과 모습이 비슷하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그 인도의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가장 많이 설법을 했던 곳으로 불교 성지로 되어 있다. 특히 붓다가 거기서 설법하는 장면은 영축회상도로 묘사되어 여러 불화로 그려졌을 만큼 불교적 상징성이 크다.
 

 

▲ 대웅전 마당에서 올려다본 영축산

통도사의 터는 낙동정맥 중 가지산(1241m),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1081m)으로 이어지며 영남알프스로 일컬어지는 큰 지형으로 감싸인 곳이다. 영축산을 배경으로 양산천 변의 낮은 봉우리들이 아늑히 감싸는 지역에 놓여 있다. 영축산 동쪽 너머에는 경주에서 양산으로 길게 이어는 들이 있다. 그 만큼 별천지 성지 같은 곳에 국가 사찰을 조성한 것이다. 통도사 주변에는 안양암, 비로암, 극락암, 서운암 등의 암자가 산재해 있다.

 

 

▲ 통도사 대웅전

 

연혁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중국에 유학한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받아 귀국한 다음 불교의 원력으로 나라를 수호하려는 생각으로 선덕여왕에게 불사를 건의하여 짓게 되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금강계단이라 이름 한 것은 부처님의 진리가 영원히 깨지지 않게 굳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금강계단은 곧 통도사를 상징한다.

 

자장스님이 당나라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除寺)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문수보살은 승려로 화하여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백 알, 불두골(佛頭骨), 손가락뼈(指節), 염주, 경전 등등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대의 나라 남쪽 축서산(鷲栖山 : 영축산의 옛 이름) 기슭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는 신지(神池)가 있는데, 거기에 사는 용들이 독해(毒害)를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삼재(三災 : 물, 바람, 불의 재앙)를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天龍)이 그곳을 옹호하게 되리라”

 

 

▲ 상도전 영역

귀국 후 신라의 대국통에 오른 자장스님께서는 선덕여왕과 함께 축서산을 찾아서 독룡들이 산다는 못에 이르러 용들을 위해 설법을 하자 한 마리만 남고 그 곳을 떠났다. 통도사가 창건되기 이전에 이곳에는 매우 큰 연못이 있었는데 실제로 구룡지와 하노전 연못을 보면 물의 흐름이 있다.

 

 

 

▲ 중도전 영역

통도사는 석가여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가 모셔져 있어 불보사찰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 보물이 안치된 금강계단은 통도사의 상징성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유물은 불교사적으로 매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불탑이나 불상 그리고 불화 등은 상징적으로 묘사해 드러낸 것인데 비해 진신사리는 곧 석가모니의 실체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강계단으로 가는 길은 붓다의 체취를 느끼러 가는 것 같은 의미가 담기게 된다.

 

곧 성지 순례길이 된다. 그처럼 이 곳 통도사는 귀한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것 자체로서 큰 상징성을 지닌다. 그런데 그 진신사리가 임진왜란 때 강탈된 후 사명대사에 의해 회수 된 후 전국의 5개 사찰에 분산 보존하면서 그를 적멸보궁이라 했는데 이곳의 상징성은 변함이 없다. 

 

 

▲ 하도전 영역

배치 및 공간 구조
양산 언양읍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영축산 통도사 편액이 걸린 입구가 나타난다.
입구로부터 경내까지 이어진 긴 소나무 터널길이 있다. 새벽이 밝아오는 아침 경내로 향하는 소나무 숲길에 소나무 향이 향기롭다. 표피와 줄기에 연륜이 풍겨나는 소나무 들은 각자 몸이 편한 방향으로 뻗치며 용틀임 하고 있다. 청정한 새벽의 소나무 길이 경내를 더욱 청정도량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 길 막바지에 일주문이 나타나고 그 안쪽으로 경내가 펼쳐진다.

통도사 배치는 개울을 따라 길게 안쪽으로 펼쳐지며, 개울 흐름과 직각으로 놓인 전각들이 입구로부터 안쪽으로 몇 개의 영역을 이루며 점차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맨 안쪽에 금강계단과 대웅전이 있는 상로전 영역이며 그 너머에도 선원이 있어 금강 계단의 영역을 깊숙이 느껴지게 한다. 통도사는 전체적으로 평지가람 형태의 너른 경내 영역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산지 가람인  부석사처럼 산비탈을 오르면서 초월의 세계로 올라가는 듯한 공간감과 달리 각각의 영역마다 다른 불교적 세계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곳은 크게 상노전ㆍ중노전ㆍ하노전의 3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맨 먼저 나타나는 하노전은 마당 가운데 놓인 탑과 영산전을 중심으로 좌우로 극락보전과 약사전ㆍ만세루 등에 둘러싸여 독립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상노전 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동선상에서 그 다음 영역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불이문이 서 있다. 

불이문을 들어서면 관음전을 중심으로 용화전ㆍ황화각ㆍ약사전ㆍ영각 대웅전으로 둘러싸인 중노전 영역이 있다. 그런데 거기서 용화전 뒤에 위치한 대명광전은 독자적인 영역을 갖추고 있어 진입축선과 직각 방향으로 확장되는 공간적 깊이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황화각과 하노전의 영산전 사이도 독자적인 마당을 형성하고 있어 하노전 및 중노전의 마당과 유기적인 연계성을 지닌다. 중노전 구역에는 그 외에도 자장스님의 진영을 모신 해장보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용화전 앞마당에는 봉발탑이 놓여 있다.

중노전 위쪽 상노전 구역에는 마당을 중심으로 대웅보전ㆍ명부전ㆍ설법전ㆍ일로향각ㆍ응진전ㆍ삼성각이 둘러치고 있으며 대웅보전이 중심을 이룬다. 대웅전 안에는 보통 석가모니불을 모시는데 이 곳 대웅보전 안에는 불성이 없는 대신 불단 뒤쪽의 큰 창을 통해 금강계단이 바라보인다. 이곳처럼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은 불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데, 그 이유는 부처님의 진신이 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처럼 이 곳 통도사에서 의미상의 구심은 금강계단이지만 건물의 배치의 공간적 중심성은 너른 대웅전 앞마당으로 느껴진다.

현재의 가람은 여러 시대 여러 영역이 통합된 모습인데 금강계단은 창건 당시의 구역으로 일주문으로부터 보면 가장 위계 높은 종착지로 인식된다. 그리고 일상의 수행공간과 달리 부처님의 진신과 만나는 성지로서의 성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다.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