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浮石寺
부석사 浮石寺
  • 나무신문
  • 승인 2014.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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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25 - 한국의 사찰 ①

 

▲ 부석사 전경

입지와 건축의 특별한 어우러짐
부석사가 위치한 곳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라 하여 양백지간이라고 불리운다. 백두산으로부터 뻗쳐 내려온 백두대간이 태백산에 이르러 호흡을 가다듬은 후, 방향을 틀어 소백산 쪽으로 내닫기 시작하는 곳이다. 이곳은 강원도의 깊은 산중과 지형 흐름이 같은 곳으로 그 큰 산세의 응축됨이 수도 도량으로서의 깊이 감을 낳는다.

부석사는 전국 사찰 가운데 가장 멋스런 모습으로 떠올려진다. 그런데 그러한 감각은 개별 건물의 멋스러움 만이 아닌 사찰로서의 규범적 격식,  삼라만상의 모든 세계와 관계 맺는듯한 광활한 관계 설정에 따른 깊고 그윽함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석사의 입지는 소백산의 비로봉을 안대 삼은 거대한 스케일의 풍광과 어우러지게 되어 있고 가까이는 각각의 건물이 놓인 지형조건과 조화를 이루며 살가운 건축의 멋을 이루어낸다.

 

 

▲ 진입 축선상에 놓인 범종루

불교 교리를 적용한 건물의 배치
부석사는 맨 아래에 위치한 일주문으로부터 맨 위의 부처를 모신 무량수전까지 10개의 단을 쌓고 각각의 축대 위에 터를 닦아 건물을 세워 놓았다. 그런데 그러한 부석사의 배치에는 불교의 세계관이 상징적으로 적용되어 있다. 즉 10개의 단마다 지옥아귀·아수라·축생·인간·천·성문·연각·보살·불 등 화엄경에서 10단계로 구분한 세상의 모든 존재의 세계를 상징해 놓았다. 그로써 입구로부터 불전까지 길게 늘여진 축선의 길은 낮은 단계의 미명의 세계로부터 깨달음의 단계로 나아가는 수행의 과정을 은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오르는 과정에서  드라마틱한 공간감을 체험 할 수 있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날 때는 경내의 건물들은 보이지 않고 묵묵히 신성한 수행 공간으로 들어서는 의식이 쌓인다. 그리고 대축단을 올라서면 가운데 놓인 범종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놓인 여러 당우들이 놓여 있어 넉넉한 사찰의 품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범종루 정면에 다가갈 때도 아직 불전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일주문을 지나 그 앞에 다다를 때까지 그 곳에서 바라보이는 사찰의 모습은 특별한 조형감이 의식되지 않는다. 그런데 범종루 누하를 지나 그 위로 계단을 막 오르면서 갑자기 환희로운 느낌을 느끼게 된다.

범종루를 지나 불전(佛殿)으로 이어지는 길은 똑바르게 연속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오르는 계단은 저만치 떨어져 있고 축선이 꺾여 있는데 그것은 터와의 균형감을 갖추게 한 것이다. 자연 지형은 인위로 닦은 공간처럼 대칭적이 될 수 없다. 범종루까지는 대칭적 배치가 안정적이지만 그 위로는 봉황산을 비켜나가 능선 사이의 계곡 지점에 놓이게 되는데, 그리되면 건물이 의지한 뒷산과 안정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축선이 꺾임으로서 무량수전이 소백산 능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보다 더욱 입체적인 장면이 형성된다. 안산과 소백산 연봉 전체로 드넓게 시선이 트여 나가고 저 멀리 자신의 마음을 드넓은 환희의 세계로 풀어헤치는 감각이 느껴져 온다. 국토의 등줄기를 이루는 장쾌한 산세가 아스라이 펼쳐 보이는 그 특별한 입지와 그 곳을 극락의 세계로 설정한 의미의 일체감이 느껴지게 된다. 

 

 

▲ 무량수전 전경

공간적 고양감과 신앙적 고양감
부석사에서 불전을 오르는 동안에는 여러 개의 축대를 지나가게 된다. 천왕문 계단, 천왕문 뒷단, 대축단 중간단, 대축단, 금강문 뒷단, 범종루 앞단, 범종루 뒷단, 안양루 계단 아랫단, 안양루 계단 중간단, 안양루 계단 상단 등 열 개의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다.

천왕문을 지날 때는 앞이 단지 경내로 깊숙이 들어가는 과정으로 인식될 뿐 축대에 가로막혀 저 너머로 시선을 보낼 수 없게 된다. 주변에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단지 가운데 놓인 외길 계단만이 나아갈 흐름을 이끈다. 단지 경내에 대한 호기심과 그윽한 상상이 수반되면서 신성한 영역과 존재 앞에 나아가는 경건한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거기서 다시 축선을 따라 오르려는 길은 높고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 있다. 가로막음은 저 너머를 향한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불전이 갖는 신앙적 상징성은 멀리까지 흡인력을 발하여 높은 축대를 넘어 이끈다.

여러 축대의 단은 공간적 영역을 구분 지으며 그를 통해 수직적 단계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누하진입 같은 타이트한 공간과 트인 공간, 오르는 계단의 길고 짧음과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의 위치를 지나면서 주변의 지형과 함께 이루어진 공간감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마침내 무량수전에 이르면 부석사만의 특별한 느낌을 체험할 수 있다. 안양루 누하를 지나 마당에 오르면서 느끼는 감각은 그 곳을 목표 삼아 구도행 같은 발걸음을 옮긴이들에게 천상 세계 같은 고양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종교적 극락의 의미와 연계된다.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건축적 구성의 종교적 승화
부석사 무량수전은 한국전통 건축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며 널리 회자되어 왔다. 무량수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가 큰 건물이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매우 부드럽게 느껴진다. 그러한 인상은 무엇보다도 지붕 곡선이 한복의 소매나 도자기의 선처럼 맵시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길게 내밀어진 추녀는 넉넉한 처마밑 공간을 이루어 내어서 높은 건물이지만 사람 눈높이에서 보면 낮게 펼쳐 보인다. 자연의 결과 형상적 흐름을 함께하는 무량수전의 지붕선은 주변 산세의 능선과 일체화 된다. 그것은 건축의 형상을 순치되게 한 것이지만 그로써 오히려 조형적 연관성은 주변 산세 전체로 퍼져나간다.

무량수전 마당에 올라 되돌아보면 그 곳을 마치 극락의 세계로 묘사해 놓은 그대로의 환희로움을 불러일으킨다. 무량수전 주변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그러한 장소적 감각과 무량수전 의 건축적 아름다움의 일체감은 부처를 모신 공간의 종교적 경건함과 일체화 된다. 화엄의 세계에서 하나의 꽃잎과 광활한 우주가 하나로 통한다고 하듯이 구도의 깨달음의 세계는 아름다움과 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석사는 가장 좋은 터에 정성스럽게 이룩된 장소성과 건축에서 느껴지는 고귀한 인상이 합치되어 종교적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혼연일체 되어 있다.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다.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