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은 ‘정원’ 무식자?!…수목원법 개정안에서 ‘정원’ 삭제하라
산림청은 ‘정원’ 무식자?!…수목원법 개정안에서 ‘정원’ 삭제하라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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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경사회·정원문화협회, ‘수목원법 개정 반대 토론회’ 개최

“산림청이 정원사업을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
“산림청 고유 업무는 잘하고 있는지 부터 반성하라”

산림청이 국가기관으로서 위상에 맞지 않는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산림청 고유의 업무 영역을 넘어 정원사업을 산림청의 소관사업으로 만들기 위한 법개정에 나서면서 관련 산업분야 및 관련 부처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

지난 4월11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는 (사)한국조경사회와 정원문화협회의 주최로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반대를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산림청의 무리한 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유를 공론화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원을 수목원법에 포함하게 된 이유
지난해 순천만정원박람회를 주관했던 산림청이 올해 ‘정원’을 ‘수목원법’에 포함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현재 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이 이를 반영한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을 중복발의한 상태다.

그간 ‘정원’에 대한 지원 법률이 없어서 국가 차원의 정원사업이 불가능했으나, 이번 수목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순천만 정원을 ‘국가정원’으로 지정해 관리와 운영에 대한 정부 지원이 가능하게 될 전망이다. 이에 산림청, 순천시, 국회의원이 이 법의 개정을 함께 추진하는 모양새로 법안 발의까지 진행된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이 발의된 후 조경단체와 국토교통부가 반대 의견을 내고, 여야 중복발의로 정치적 실타래가 꼬이면서 잠시 추진 동력이 주춤하고 있다.

한국조경학회와 한국조경사회 등 조경단체들과 국토교통부는 수목원법 개정안에서 ‘정원개념 삭제’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미 공원을 소관하는 부처가 있고, 순천만 정원은 ‘공공의 정원’ 즉 ‘공원’이라며, 이번 개정안에서 이야기하는 ‘정원’은 그 개념부터가 모호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이 법안을 발의한 이낙연, 경대수 의원 측도 “수목원이나 정원은 형태가 비슷하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져 이에 대한 전문가적 견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다고 공원이 정원되나?
‘수목원법 개정안 반대를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에 나선 한국조경사회 진승범 부회장은 크게 세 가지의 논점을 명확히 했다. 첫째는 정원에 대한 개념이고, 둘째는 산림청의 역할, 셋째는 조경학에서 정원의 위상이다.

우선 산림청이 정원에 대한 개념을 매우 곡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원은 좁은 의미로는 주택이나 빌딩 등 건물에 부속된 외부 공간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공원, 수목원, 식물원, 궁원 등 공적인 공간을 포괄하고 있으며, 실제 많은 사전과 학술지들이 그렇게 정의하고 있다. 또한 건물에 부속된 개념으로서 뜰이나 못 등이 설치된 주택정원은 사적 소유 공간으로서 국가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므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정원은 결국 공원, 수목원, 식물원, 궁원 등의 공공정원으로 보아야 한다.

이에 개념을 명확히 하자면 순천만정원은 ‘공원’에 해당한다는 것. 세계 유명 가든박람회가 모두 공원에서 열리고 있는데 가든박람회가 열렸다고 공원을 정원이라고 부르지는 않으며, 가깝게는 경기정원박람회도 여러 공원을 옮겨다니며 개최하고 있지만 결국 공원은 공원일 뿐. 산림청이 말하는 정원은 공원과 비교해 독특한 개념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결국 ‘순천만 정원’도 정원박람회를 개최한 공원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흔히 이야기하는 좁은 의미의 정원은 건축법의 ‘대지안의 조경’에서 다루고 있으며, 공원은 국토부 소관법률인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서, 궁원과 전통정원은 문화재청 소관 문화재보호법에서 관리하고 있고, 수목원을 포함하는 식물원은 환경부 소관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플루어에서는 수목원과 정원이 방계가 아닌 직계의 개념인데 산림청이 ‘수목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로 이름을 병치시켜 바꾸는 것은 잘못이라며, 앞으로 순천만 정원을 ‘국가정원’이 아닌 ‘국가공원’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산림청, 간판을 바꾸든가…
둘째로 진승범 부회장은 ‘산림청의 역할에 정원이 포함될 수 있는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림인 우리나라에서 과연 산림청은 본연의 업무를 다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고, 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했다.

플루어에 있던 이민우 교수(공주대)는 이에 대해 “산림청이 산림에서 내려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보인다. 만약 대안이 있다면 산림청이 이름을 바꾸려는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정원은 조성법보다 문화법이 돼야 한다. 이 법이 그대로(산림청 소관 법률로) 통과되면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조경학회 김한배 회장도 “유엔 산하 기구 ILO가 명시한 직능별 직업의 대상 영역에 조경이 있고, 조경전문가가 하는 대표적인 일을 정원과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며 “세계적으로 산림청이 정원업무를 하는 경우는 없다. 정원사업을 하려면 이름을 바꾸고 관련부서를 만들고 공명정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조경사회 정주현 회장은 “산림청이 식물원법도 법제화하지 못하면서, 정원을 법제화하는 시도는 ‘무식의 소치’로 보인다”다며 제 역할도 못하는 산림청에 대해 성토했다.

 

조경의 역사가 정원의 역사다
셋째로 정원은 조경분야의 전통적인 영역이었음을 확실히 했다. 조경학의 태동 자체가 정원기술의 발전에서 시작됐다는 것. 그런데 산림청에서는 조경분야가 정원업무를 해 왔다는 사실 조차 몰랐으며, 이제와서 조경분야가 정원업을 해왔음을 인정하는 등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승범 부회장은 과거 조경설계사무소의 신문하단광고를 보여주며 조경설계사무소가 전통적으로 정원조성 업무를 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수천년 조경의 역사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않고 정원이란 단어를 선택할 것이다”라는 부산대 조경학과 이유직 교수의 원고를 인용해 조경분야에서 정원의 위상이 어떠한지 이해시키고자 노력했다.

또한 통계청의 한국표준산업분류에서 정의하고 있는 정원업이 조경건설업에 속해 있다는 것과 조경기술자의 주요업무를 정원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 국내 대학 조경학과의 정원 관련 커리큘럼 등을 보여주며, 조경에서 정원이 차지하는 위상을 산림청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이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논리는 승리, 현실은 글쎄?!
이날 토론회는 수목원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반대하기 위한 기획이었고, 핵심 쟁점을 잘 드러낸 자리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개정안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이 법을 통과시키려는 산림청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순천시민의 여론이 부담이다. 플루어에 참석했던 산림청 산림보호과장도 이 법을 반대하는 국토부나 농진청과 합의가 진행되지 않으면 원안 그대로 법안 상정을 추진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정원은 조경가만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화가도, 건축가도, 동네 아줌마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국토부가 해야 할 일을 산림청이 하고 산림청이 해야 할 일을 국토부가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산림청은 이름을 바꿔달든가, 아니면 정원을 전유하려는 의도를 버리라는 요구에 얼마나 설득력 있는 반박을 내놓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