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단 香壇 보물 412호
향단 香壇 보물 412호
  • 나무신문
  • 승인 201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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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5 - 한국의 名家 5/14

▲ 노천부엌
입지
양동마을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올려다 보이는 향단은 규모가 매우 큰 양반 가옥으로서 마을 전체의 격조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양동마을은 물(勿)자 형국의 지형 상에서 손씨와 이씨의 종가와 파종가들이 경쟁하듯 주요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획은 관가정, 서백당 등 손씨 가문이 차지하고 있고 세 번째와 네 번째 획은 향단, 무첨당 등 이씨 가문의 가옥이 차지하고 있다. 그 중 향단이 앉은 물봉 능선은 그 세 번째 획에 해당하며 성주산을 가장 가까이 마주 보고 있다. 양동마을은 마을 내 주요 입지를 양반가옥이 차지하고 아래쪽에는 하인이나 노비 등의 가옥이 들어서서 전체적인 배치 구성이 지형 중심과 높낮이 상에 위계적 질서를 띠며 유기적으로 구성돼 있다.

 

▲ 향단 후면
가옥적 특성
향단은 회재 이언적(晦齎 李彦迪, 1491-553)이 1543년경 경상감사로 부임할 때 중종 임금이 그의 모친의 병환을 돌볼 수 있도록 배려해 지어 준 집으로, 회재가 벼슬살이를 하는 동안 형을 대신해 노모를 모시며 가문을 지켜가던 동생 이언괄의 살림집이다. 회재는 고향에서 가문을 지키고 노모와 집안을 돌보는 동생에게 마음을 많이 기울였다.

향단의 가옥 구조는 입지와 규모 그리고 인적 구성 등의 계획조건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계획의지가 반영돼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다. 우선 전체 규모가 매우 큰 편인데 대부분이 안채와 곳간으로 구성돼 살림 영역이 사랑채에 비해 훨씬 크게 돼 있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에 비해 부엌이 매우 큰 편인데, 이는 제사 등 가문 행사 때 많은 손님들이 모이는 것을 고려한 결과로 여겨진다. 그리고 수납 공간도 매우 많아서 행랑의 곳간과 부엌 상부 등에 다락이 설치돼 있다. 또한 지형의 높낮이로 생성된 공간을 적절히 활용해 헛간 등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또한 이 집의 또 다른 특이점은 부엌이 노천 부엌으로 돼 있는 점이다. 전통가옥은 대체로 난방과 취사를 겸한 부엌 아궁이 위쪽에 안방이 놓이며 그것이 안채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부엌 주위에는 여러 가지 그릇을 저장하는 찬장이나 땔감을 저장하는 공간이 필요해 비교적 넓은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집은 안방 다락 밑에 난방용 아궁이가 있을 뿐 일반적인 부엌이 없는 점이 특이한데 그것은 이 집의 쓰임 성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즉 평상시 살림 구조와 농사의 갈무리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쓰임 양상이 달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노천은 부엌과 마당 공간을 겸한 형태로, 주로 부엌 기능은 이곳에서 영위 됐을 가능성이 많으며 그에 관한 실제 기록도 남아 있다. 또한 이 집은 가옥 내에 광, 다락 등 수납 공간이 많이 갖춰져 있다.

 

▲ 안채 부엌 쪽 다락층
▲ 안채와 행랑채의 틈새 공간
드라마틱한 공간의 감각

향단은 한국전통건축 가운데 계획적 의지가 가장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건물이다. 공간 구성과 쓰임새의 특성뿐 아니라 드라마틱한 공간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 집은 외부에 개방적으로 드러나는 사랑채와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내밀한 안채, 그리고 안채 앞에 겹쳐 놓인 행랑채로 구성돼 있으며, 평면 형태는 안채 내부에 두 개의 마당을 지닌 구(I日)자 형태로 결합돼 있는데 건물의 배열과 그 각각의 건축을 연계하는 동선, 그리고 채와 채 사이의 내외부 공간과의 관계에 의해 다양한 감각이 표출된다. 즉 남녀 공간의 구분과 영역 설정에 의한 내밀함과 개방감, 그리고 사용자의 신분적 차이에 따른 감각적 변화가 다채로움을 띠는데 그 또한 면밀한 구상에 의한 결과로 보인다.

▲ 안채 대청마루의 열린 시선
향단은 특히 공간의 조직에서 명암의 대비가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행랑채에 난 중문을 통해 들어서면 안채로 이어진 지붕에 의해 깊고 어두운 통로의 공간을 지나게 되고 거기서 점차로 높아지는 지형을 따라 노천 마당으로 나아가면서 점차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데, 필로티 구조로 된 그 상부에 다락 층이 설치돼 있어 천정이 높낮이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바닥의 흙마당은 물성과 판문 사이로 들어오는 한줄기 햇살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노천부엌으로 지나는 다락 하부의 흙바닥은 마당으로부터 건물의 윤곽 안으로 파여 들어가듯 불학정적으로 연계돼 자연스럽고 다채로운 공간감을 표출하는데, 그러한 구조가 마치 음양이 하나로 결합된 태극 도형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대비적 성격이 균형을 이루는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실질적 건축주라 할 수 있는 회재의 성리학자로서의 사유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집은 전체적으로 열림과 닫힘, 밝고 어두움, 드러남과 감춰짐 같은 상반된 성격을 지닌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음과 양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태극 도형의 원리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회재는 태극에 담긴 오묘한 의미를 중시 여겨 ‘태극도설’이라는 저술을 남겼다.

향단의 건축적 계획 의지는 밝음보다도 어두움을 형성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기울여져 있다. 사물은 본래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밝음은 자연스레 형성되는 반면에 건축적 어두움은 인위적 요소에 의해 형성되는데 이 집은 안채를 둘러친 행랑채와 틈새 공간 등 어두움을 형성하는 시설들이 다양하게 구축돼 있다.

노천 부엌에서 안채 마당으로 향하는 채와 채 사이의 공간은 골목과 같은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길에 의해 방향성이 부여되고 영역 사이의 전이감이 표출된다. 그리고 동선이 끝나는 안채 마당에서의 흐름은 안 사랑채의 대청마루와 연결되는데, 그 대청마루에 오르면 앞에 낮게 놓인 행랑채 지붕이 시선에 반쯤 걸친 상태로 돼 있다. 그리고 그 지붕 위쪽으로 시선이 트여 나가 산자락이 보이는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이 이 가옥에서 느낄 수 있는 건축적 감각의 백미이다. 미로와 태극처럼 얽힌 공간이 결합된 상태에서 궁극적으로 만나는 것은 열림의 시선이다.

▲ 안채 마당과 중문 사이
지형과 가옥구조
향단이 앉은 곳은 봉우리 지점에 햇볕이 잘 드는 동남측 경사지로서 성주산의 안대와 농경지로 열린 시선을 갖도록 배치돼 있다. 즉 가옥에서 바라보이는 주 시선은 성주산을 안대로 삼았고 건물의 공간 배치는 지형 흐름에 맞춰 그 안대와 직각 방향으로 놓이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계획 요소는 행랑채의 배치이다. 보통의 경우 행랑채의 위치는 담장을 따라 놓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경사 지형으로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안채와 평행하게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형의 고저 차에 맞춰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고 있다. 이 집에서 지형은 공간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행랑채 뒤에 놓인 안대청에 오르면 행랑채 지붕 너머로 시선이 트여 나간다. 즉 평면적으로는 닫힌 영역이지만 단면상으로는 지형의 고저 차에 의해 반전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