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바다 낭만의 길, 부산을 걷다
태양의 바다 낭만의 길, 부산을 걷다
  • 나무신문
  • 승인 201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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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부산 감천문화마을과 이기대해안길

▲ 감천문화마을 전경 ⓒ 장태동
부산 자갈치 꼼장어로 여행 첫날밤을 보냈다. 그것도 1950년부터 꼼장어를 구워 팔아온 성일집이라면 음식의 내력이 개인의 입맛에도 관여하기에 충분했다. 부산의 맛에 이은 부산 여행은 부산을 부산답게 만드는 두 가지 향기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젊은 바다가 출렁인다. 물결처럼 쓸리고 밀리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낭만의 길에 넘쳐난다. 예술과 삶의 향기 진한감천문화마을 골목길은 젊은이들의 웃음으로 청춘이다. 기암절벽 이기대해안길을 걷는 내내 바다는 상쾌, 통쾌하다. 

 

▲ 감천문화마을 어린왕자 조형물이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다 ⓒ 장태동

따듯한 추억과 낭만의 골목길
바다에서 시작된 산비탈 꼭대기까지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의 첫 인상이 그랬다.
감천문화마을은 1955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전국의 태극도 신도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던 곳이다.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 해발 200~300m 정도 되는 비탈진 곳에 1천 여 가구의 판자집을 지어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당시 판자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한 번 불이나면 마을 전체에 불길이 퍼지는 큰 화재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서 마을 아래부터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폭 6m 정도의 계단을 3개 만들었는데 계단 폭은 좁아졌지만 지금도 그 계단길이 남아 있다.

판자집들은 1970년대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1980년대에 들어서 판넬집과 슬라브집등으로 개량되었다.

▲ 감천문화마을 골목길 어귀 ⓒ 장태동
감천문화마을은 한때는 3만 명이 모여 살던 곳인데 주민이 1만 명 정도까지 줄어들었다. 마을이 쇠락해지자 마을을 살려보려고 2009년 지역 예술가와 주민 등이 합심하여 문화체육관광부 마을미술 프로젝트 사업으로 마을 일대에 예술작품을 설치하면서 문화마을로 재탄생하기 시작했다.

예술의 향기와 지역 주민들의 삶의 향기가 어우러진 골목길을 걸으면 자물쇠로 잠겨있던 마음의 쪽방 문을 열고 잊힌 기억을 꺼내보는 작은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마을버스 내리는 곳 앞에 감천문화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가게가 있는 마을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감천문화마을 작은박물관이 보인다. 박물관에 들러 마을의 역사를 돌아보고 감천문화마을지도를 구입(2000원)한 뒤 안내를 받고 본격적으로 골목길 순례를 시작하면 된다.

여러 갈래 골목길 곳곳에 2009년 마을미술 프로젝트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의 일환으로 만든 작품들과 2010년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 2012년 <마추픽추 골목길 프로젝트> 등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예술품들을 돌아볼 수 있다.

예술 향기는 낭만으로 전이되고 예술을 품은 생활의 공간, 골목길은 그 자체로 걷고 싶은 곳이다.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길도 있다. 골목길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데 그런 골목을 천천히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 저절로 마음이 따듯해지고 푸근해진다. 

 

▲ 이기대해안길 끝에 있는 오륙도해맞이광장 스카이워크 ⓒ 장태동
상쾌, 통쾌한 해안길 4.6㎞
이기대해안길은 이기대성당부터 시작해서 오륙도스카이워크가 있는 오륙도해맞이광장에서 끝나는 약 5.6km 길이다. 이중 이기대성당에서 본격적인 바닷길이 시작되는 동생말(더뷰웨딩홀이 있는 곳)까지 약 1km를 제외하고 나머지 4.6km는 바다를 옆에 두고 해안길과 해안절벽길, 해안산길 등을 걷는 코스다.

부산역 앞에서 27번 버스를 타고 이기대입구 정류장에서 내린다. 정류장에서 약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이기대성당이 있다. 성당을 지나 조금 더 가다가 삼거리를 만나면 좌회전하면 된다.

길은 외길이다. 그 길 끝이 동생말(더뷰웨딩홀이 있는 곳)이다. 출발지점부터 바다 풍경이 멋지다. 광안대교와 동백섬, 달맞이고개가 한 눈에 들어온다.

▲ 이기대해안길에서 광안대교, 동백섬, 달맞이고개가 한 눈에 보인다 ⓒ 장태동
이기대는 동래영지에 그 유래가 나온다. 조선시대 좌수영의 좌수사로 있었던 이형하(1850년 재임)가 종전의 기록을 토대로 보충 기록한 동래영지에 따르면 ‘이기대는 좌수영 남쪽 15리에 있다.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서 그리 말한다’라고 적고 있다.

기생과 함께 풍경을 즐기고 놀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다. 두 기생의 무덤이 여기에 있었다고 하니 아마도 이 길에서 보는 풍경과 두 기생 사이에 무슨 깊은 사연이 있을 듯 싶다. 

▲ 이기대해안길에서 바라본 달맞이고개 ⓒ 장태동
구름다리 구간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해녀막을 만난다. 해녀막은 해녀들이 해산물을 따고 어구를 보관하고 잠수복을 갈아입고 휴식을 하는 곳으로 약 40년 전에 만들어졌다. 해녀막은 거북이 모양으로 생겼는데 머리 부분은 자연석 갯바위이며 그 주변으로 돌을 쌓아 만든 것이다. 지금도 해녀막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오가는 길손에게 해산물을 팔고 있다.

길은 바다 옆에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산의 굴곡을 따라 오르내리고 구불거리며 돌아간다. 간혹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나무데크 구간도 지나는데 그런 곳일수록 경치는 끝내준다.

어울마당에서 한 번 숨을 고른 뒤 다시 출발한다. 바다가 보이는 산길로 올라서서 걷다보면 농바위를 만나게 된다. 바다에서 솟은 기암절벽인데 장롱을 쌓아 놓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농바위다. 농바위를 지나 마지막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도착지점인 오륙도해맞이광장까지 내리막길이다. 해맞이광장 한쪽에는 절벽 끝에서 허공으로 삐쭉 머리를 내민 ‘스카이워크’가 있다. 강화유리로 만든 길을 걸어갔다 오는 짧은 구간이지만 발 아래 절벽과 바다가 다 보여서 아찔하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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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