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 일상의 틈
문화칼럼 - 일상의 틈
  • 김도언
  • 승인 2007.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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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로의 어느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해의 봄날의 일이다.

그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 점심을 먹고 잠시 산책을 나갔다. 산책은 그 당시 내 중요한 일상 중 하나였다.

나는 산책을 통해 빼곡한 일상의 틈을 발견하고 그 속에 들어가길 희망하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마로니에 공원을 돌아서 방송통신대 교정으로 들어섰다. 교정에는 갖가지 봄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봄꽃들에게 깊은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교내 우체국 앞을 지날 때, 택배용 탑차가 한 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탑차를 가까이에 끼고 스치듯이 지나갔는데, 그것은 어쩌면 내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차 옆을 지날 때 무심코 운전석 안을 들여다본 것까지를 포함시키면 더욱 그러하다.

나는 그때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장면을 보고 말았다. 그 좁은 운전석에서 왜소한 몸집의 젊은 운전기사 하나가 몸을 잔뜩 움크린 채로, 몹시 조급한 표정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밖은 약 먹은 꿈속처럼 환한 봄날이고, 햇볕은 알맞게 따뜻하고, 우체국 옆의 목련나무는 마술을 부리듯 하얀 꽃들을 펑펑 터뜨리고 있었다. 철쭉도 어지러이 제 빛을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기껏해야 스물여덟이나 아홉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청년은, 운전석에서 몸을 숨기고 마치 숭고한 의무라도 되는 양, 어떤 의식이라도 치르는 양 필시 몸소 준비했을 음식을 입안으로 꾸역꾸역 밀어넣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왜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일까. 어린애의 콧물까지도 얼리는 엄동의 겨울이었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그날은 미칠 듯 화창한 봄날 아니었던가. 무엇이 젊은 청년을 먹고 사는 일을 민망하게 했던 것일까. 그것을 모르지 않는 나는 그의 눈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점심 식사가 그 어떤 파티의 오찬보다도 즐겁고 유쾌한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서둘러서 한가로운 봄날의 산책을 마쳤다.

그리고 일상의 틈에서 발견한 그 작은 풍경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제 몸을 숨겨야만 하는 영혼은 얼마나 가난하고 애틋한 것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