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행복해지는 길
걸으면 행복해지는 길
  • 나무신문
  • 승인 201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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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남 담양 국수거리~죽녹원~관방제림~메타세쿼이아길

▲ 관방제림 거대한 나무가 뚝방 위에 줄지어 섰다
국수거리에서 국수를 먹고 걷기시작한다. 죽녹원 뒷마당에는 담양에 있는 온갖 정자를 옮겨 놓았다. 관방제림길 2km를 걸으면 메타세쿼이아 거리를 만난다. 메타세쿼이아 거리는 원래 포장도로였는데 다 뜯어내고 흙길을 만들었다. 자전거도 들어가지 못하고 오로지 걸어야 한다. 걸으면 행복해진다.

 

국수거리
아침 먹고 서울을 출발했는데 담양에 내리니까 점심시간이다.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았으나 지금 먹지 않으면 저녁까지 굶어야하기 때문에 점심을 먹기로 한다.

담양 점심 꺼리는 당연히 국수다. 떡갈비와 대통밥도 유명하지만 점심으로 먹기에는 좀 부담스럽다. 게다가 배가 고프지도 않으니 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낫겠다 싶었다. 국수거리는 담양공용버스터미널에서 약 1.2km 거리로 택시를 타면 3500원 기본요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국수거리를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 뚝방길을 따라 국수집이 이어진다. 국수 거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0년도 채 안되지만 사실 이 거리의 국수 역사는 40~50년은 됐다.

어떤 집 간판에 40년 전통이라고 써놓았다. 국수거리를 걸으며 이집저집 들러 물어봤더니 담양 국수거리는 담양의 특산품인 대나무제품과 관련이 깊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 사람들은 옛날에는 대나무로 집을 짓고 세간도 대나무로 만들어 썼다. 그런 대나무제품을 팔고 사는 시장을 죽물시장이라고 했는데 오일장이 열리는 것처럼 죽물시장도 특정한 날에 섰다. 죽물시장이 서는 날만 팔던 국수가 지금 담양 국수거리의 시작이었다.  

맘에 드는 집을 골라 들어갔는데 식당 안이 꽉 차서 냇물이 내려다보이는 평상에 앉았다. 춥긴 했지만 햇살이 아늑해서 견딜 만 했다.

대나무로 만든 평상도 운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 국수를 차려주는 상이 소반이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해놓고 조약돌로 소반지어 언니누나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에 나오는 소반을 여기서 다시 보다니!

▲ 국수거리 멸치국물국수와 비빔국수
소반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보통 집에 하나쯤은 있었다. 소반을 보니 머리 맞대고 후루룩 쩝쩝 냠냠 음식을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밥상 앞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하며 어느새 밥 한 그릇 다 먹게 했던 소반 앞의 엄마는 지금 내 나이 보다 어렸다.  

 
추억 때문일까? 국수도 옛 맛이다. 멸치국물을 우려 면을 말고 양념장을 얹어 내는 멸치국물국수가 주룩주룩 넘어간다. 비빔국수도 맛있어 보여 같이 시켰는데 남길 수 없어 다 먹었더니 배가 터질 것 같다.

 

관방제림길 2km를 걷다
점심 메뉴로 국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목젖까지 차오른 포만감에 걸음이 느려진다. 느릿느릿 걸어서 담양여행 1번지인 죽녹원에 도착했다. 죽녹원 대밭길은 여러 갈래인데 그중 가장 외곽으로 난 길을 선택했다. 외곽길로 걷다가  대숲 안쪽으로 통하는 길을 만나면 그길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나와 외곽길을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도착한 곳이 죽녹원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다.

그곳에 서면 저 멀리 광주 무등산도 보이고 눈앞에 담양시가지와 남산, 관방제림길, 메타세쿼이아길 등도 한 눈에 다 보인다. 

▲ 죽녹원 언덕에서 본 풍경
언덕에서 내려와 담양에 있는 정자들을 그 모양 그대로 지어놓은 곳을 돌아보고 다시 대숲길로 접어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고 노무현 대통령이 걸었던 대숲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안내판에 그의 사진이 있었다. 안내판도 참 소박해서 인상 깊었다.
죽녹원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면서 왼쪽 뚝방길로 접어든다. 초입에 관방제림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 옆 안내판에 따르면 관방제림은 담양천변 제방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시대 인조 임금 때 인공으로 만든 숲이다. 이후 철종 때 연인원 3만여 명을 동원해서 제방과 숲을 정비했다.

옛날에는 관방제림 안에 약 700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현재는 320그루 정도 남았다. 관방제림 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2km 구간 안에 200년이 넘은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 등이 있다.

 

▲ 메타세쿼이아길
언제나 낭만, 메타세쿼이아길
약 2km 남짓 되는 관방제림길 끝에 메타세쿼이아길이 나타났다. 메타세쿼이아길은 그곳에서 또 약 2km 정도 이어진다.

이 길은 전에는 포장도로였는데 다 뜯어내고 흙길로 만들었다. 자전거도 타고 다닐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자전거 출입 금지다. 오로지 걸어야 한다.

▲ 죽녹원대숲
죽녹원 대숲길과 관방제림길을 걷는 사람들의 자세와 메타세쿼이아길을 걷는 사람들의 자세가 다르다. 메타세쿼이아길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 없이 느려진다. 느려지다 못해 멈추어 선다. 멈추어서 하늘도 쳐다보고 나무 곁에 서보기도 한다.

그 길에 있는 것이라곤 의자와 원두막, 몇 개의 조형물이 전부다. 그 길 걷는 사람들 표정이 밝다. 활짝 웃거나 미소를 머금거나 팔짱을 끼거나 허리에 손을 두르거나 손을 잡거나 아니면 걸으며 입을 맞추기도 한다. 그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메타세쿼이아길은 오후에 걸어야 한다. 특히 따듯한 색감을 풍부하게 머금은 오후의 햇빛이 비낄 때 걸어야 한다. 

메타세쿼이아길 끝에 다다랐을 때쯤 해가 기울어 빛이 풍부해지고 그림자도 길어진다.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서 있는 나무 그림자가 길 안으로 나란히 기울어진다. 연인들이 얼굴과 어깨에 황금빛 저녁 햇살에 흠뻑 젖어 걷는다. 걷는 게 행복한 길이다.
 

▲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걸었던 죽녹원 대숲길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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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