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적 감성으로 2퍼센트를 찾다
향토적 감성으로 2퍼센트를 찾다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3.11.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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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장이 ‘박홍구’ 이야기

“부족한 2%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땅을 살면서 가지게 된 감성이나 본능적인 문제가 아닐까”

가구장이 박홍구 작가는 어느 날 부턴가 수입목을 사용한 가구들을 보면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단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2%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국산목을 사용했고, 그때부터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 나무의 절제된 색과 무늬는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우리 나무에 끌리는 우리들의 태생적 본능이야말로 바로 ‘2%’의 진정한 의미다.

 

가구장이로 살다
박홍구 작가가 처음 나무와 만난 것은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가구공장은 그가 평생 동안 목공을 하며 가구장이로 살도록 만들었다. 지금이야 가구공장들이 기계시스템으로 무장됐지만, 당시만 해도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했다. 오히려 공방 작업은 당시 가구공장에 비하면 단순한 편이란다. 현대공방들이 사용하는 기계시스템에 비하면 과거 공장은 수작업이 훨씬 많았던 것.

13년 전 아이가 태어나던 해, 경기도 고양시 토당동에 작은 공방을 열었다. 애초에 공방을 차릴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IMF가 오기 전부터 국내 가구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결국 가구공장들이 무너지면서 박홍구 작가도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했다. 그렇다고 전혀 생뚱맞은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구공장을 다니면서 다양한 목공을 경험했고, 해외 유명 가구의 모사품도 다수 만들어 봤던 터라 기본기는 이미 갖춰져 있었다. 공방 초기에는 주로 주문 제작해 판매하는 일을 하면서 회원 운영과 목공 교육을 겸했다.

 

나만의 색을 찾다
현재 박홍구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한 곳은 경기도 이천의 한 후미진 곳. 10년 전 아내와 함께 부지를 사서 덩그러니 남아있던 축사를 개조하고 울타리 안으로 정원을 만들어 삶의 보금자리를 일궜다. 이천으로 공방을 옮긴 것은 전원생활에 대한 계획이기도 했지만 초창기 도시 공방 활동에 대한 회의감도 한몫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질 좋은 공방 활동은 힘든 일이었다고.

“먼저 내 자신을 제대로 만들고 나서 여유롭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가 좀 더 들고 경제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때, 순수하게 접근해야 즐거운 목공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는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기 시작했고, 현재도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중”이라며 당분간은 작품에만 집중할 계획이란다.

 

감성을 발견하다
최근 박홍구 작가가 집착하는 가장 큰 테마는 ‘감성’이다. 특히 ‘감성의자’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가 말하는 감성의자란 ‘사용자가 좋은 감성을 느끼는 의자’다. 이를 위해 외형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나무에서 나오는 심리적 질감이 더 중요하다. 아늑하고 포근한 의자, 색이 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하며, 가구보다는 사람이 먼저 보이는 의자가 바로 감성의자다.

“보통 의자는 정형화돼 있죠. 그러나 감성의자는 신체 구조가 어떤지에 상관없이 어느 각도에서나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복잡한 생활 속에서 살기 때문에 어깨나 머리가 많이 무거운데, 허리 보다는 어깨와 머리를 기댈 수 있는 의자가 감성의자입니다”

 

꾸준히 걷다보면 역사가 될 것
앞으로도 특별한 계획보다는 부지런히 옆길로 세지 않고 가구를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다.

“역사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열심히 살아서 자료가 남으면 그것이 모이고 모여 나라의 튼튼한 자료가 되고 역사가 되는 게 아닌가요?”

목수로서 꾸준히 살다보면 그것이 역사가 될 것이라는 신념. 그는 ‘나무를 만지는 직업이니 나무를 만지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니, 멈추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신 느리게 가겠단다. 그렇게 천천히 가야 가구를 만드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박홍구 작가는 화려한 디자인을 보여주는 작가는 아니지만, 매순간 느끼는 감성을 모아 가구에 혼을 불어넣는 열정의 가구장이인 것만은 확실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좀더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만든 역사가 무엇이더냐고 물으며 그의 집 마루에 다시 마주 앉아 탁주 한 사발 청할 날이 올 것을 상상해 본다.

 


당신의 감성을 포근하게 감싸줄
‘감성의자’를 말하다


박홍구 작가

 

작품의 특징
공방에서 월넛이나 로즈, 최근엔 에쉬 오크 등 수입목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만족감이 떨어지고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소재를 국산목으로 바꾸게 됐죠.

우리 나무는 색이나 향기 무늬가 매우 절제돼 있어요. 한번에 드러나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아마 이것은 한국인이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이거나 내면의 감성인 듯합니다. 국산목의 매력은 하드웨어적인 것보다 정서적인 면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재는 우리나라 것만 사용하고 있어요.

 

작품 세계
목공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표 작품이 하나씩은 있어요. 저의 대표작은 ‘감성의자’입니다. 감성의자는 사용자가 제 가구를 통해 편안하고 좋은 감성을 느끼도록 해서 결국 만족도와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보통의자는 등을 기대는데, 감성의자는 머리와 어깨를 기댈 수 있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머리와 어깨를 기대니 상당히 편안합니다.

제가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아늑하고 포근한 걸 좋아합니다. 집에 들어섰을 때 가구가 튀는 것보다는 사람이 먼저 보여야 한다는 철학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보면 볼수록 심리적으로 아늑하고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가구의 외형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나무에서 나오는 심리적 질감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감성’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갑니다.

 

작품의 구현
가급적 나무에서 나오는 색감을 살립니다. 컬러풀한 색은 선호하지 않아요. 그래서 국산목이라도 참죽이나 느티나무처럼 화려한 나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흔히 사용되지 않는 수종을 사용하는데, 가래나무 같은 경우는 외국 월넛 못지않게 좋은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자작나무도 우리나라는 홍자작나무인데 색감도 은은한 게 좋습니다.

그리고 나무는 자연건조를 시켜서 크랙이 많은 것을 사용해요. 전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럽더라구요. 사람이 일부러 막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막는 것 자체가 더 부자연스럽다고 느끼죠. 그게 우리나라 사람의 심성인 듯하고 제 감성일 수도 있구요. 나무를 자연 속에서 건조시키면 갈라지기도 하고, 색도 다양해지는데, 그게 더욱 자연스러운 소재가 됩니다.

도구는 깍기를 많이 사용합니다. 깍기는 목수들의 원초적인 도구인데 예전에는 집을 짓거나 마루를 놓을 때 다 깍기를 사용했어요. 요즘엔 잘 사용하지 않지만 매력적인 도구죠.
디자인에 대해 특별한 원칙은 없습니다. 디자인 개념은 가져가지 않아요. 다만 일상생활 속에서 보이는 꽃이나 숲 등이 모티브가 되죠. 감성의자의 모양들도 숲을 보고 꽃과 나무가 엉킨 모양을 형상화 한 것이었어요. 형상보다는 질감 표현을 많이 합니다.

 

나무의 매력
나무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줍니다. 나무처럼 따듯하고 포근한 자연을 보고 자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심리는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될 겁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책상만이라도 진짜 제대로 된 느낌의 것을 해줘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압니다. 굳이 착하게 살아라 이야기 하지 않아도 나무를 접한 아이들은 감성이 발달해서 기타도 잘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심성도 곱습니다. 나무 자체가 교육입니다.
 글 _ 박광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