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소진한 고송의 미학, 오래된 나무를 박제화하다
열정을 소진한 고송의 미학, 오래된 나무를 박제화하다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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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초대전

▲ The Landscape of The Subconscious. cement, wood, 200×28×26㎝×4ea
이종희 작가는 전봉준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고창에 가기도 했으며, 소격동 기무사에도 달려갔었다. 바로 고송을 찾기 위해서였다.

인사동에 위치한 장은선 갤러리에서는 10월23일부터 11월2일까지 이종희 초대展이 열리고 있다. 작가는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생명을 다해가는 재료들을 찾아서 이를 시멘트 속에 박제화시킨 작품들을 통해 ‘버려진 에너지의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 The Landscape of The Subconscious. cement, ceramics, bottles, toys, wood, mirror, 185×90×10㎝×9ea
그의 작품에서 고송은 오래된 재료다. 화려했던 쓰임새를 뒤로 하고 버려진 고송이 마치 태초부터 시멘트와 한 몸인 양 섞여있다. 고송은 자연에 가장 가까운 재료로서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생애과정을 거치며 시간에 따른 변화를 잘 드러내는 매력 있는 소재다. 특히 ‘오래된’나무는 과거 도구로서의 기능을 소진하고 죽음을 맞이한 오브제로서 ‘기능을 박제화’ 하려는 작가적 의도에도 잘 부합한다.

작가는 “죽음을 맞이한 오브제들을 수거하여 염하듯이 거푸집 안에 넣고 시멘트 몰타르를 부어 박제시킨다. 며칠간의 양생 시간을 거쳐 인간의 모든 손때와 기억들을 지워 버린다”며 도구로서의 기억은 박제시켜 버리고 사물로서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이 작품의도라고 밝힌다.

▲ The Landscape of The Subconscious. cement, stone, automobile accessories 32×17×17㎝
그가 전하려는 미학은 ‘늙은이의 아름다운 주름’과도 같다. 무엇보다 오래된 것, 버려진 것들에 대한 애정이 작품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 때는 넘치는 열정으로 빛이 났을 그들을 박제화하는 것, 이는 ‘죽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생에 대한 ‘기념’과 ‘찬양’의 의미로도 다가온다.

멋진 나무들을 구하기 위해서 전국을 수소문하며 찾아다닌다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각각의 고송들이 간직하고 있을 사연을 느껴보자.
글 _ 박광윤 기자 | 자료제공 _ 장은선 갤러리

 

▲ The Forest to be Remembered. cement, 240×240×20㎝
이종희는 버려진 사물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렸을 적부터 나무와 가까이 자란 때문인지 버려진 나무에 대한 애정은 더 하다. 버려진 사물에 대한 애정은 기본적으로 사물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내가 쓴 물건이든 남이 쓴 물건이든, 오랜 세월 누군가에게 사용된 물건에서는 어떤 이의 삶, 그 삶의 에너지가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기름때 잔뜩 묻은 자동차 엔진에서 오랜 작업의 고단함, 소진된 에너지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하니, 그에게 그 자동차의 기름때는 마치 어느 늙은이의 아름다운 주름과도 같은 것일 게다. 늙은이의 주름 속에 세월이 흔적이 녹아 있듯, 누군가에 의해 오래 사용된 물건에는 그 물건과 사람이 함께 했던 시간들, 그 에너지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 도경민 ‘버려진 에너지의 박제(剝製)된 아름다움’ 중에서


서울 종로구 인사동 10길 23-8 장은선 갤러리     문의 = 02.730.3533 


▲ Memorized woods. cement variable, H 300㎝